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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포격 5년> ②현장지휘관 "해병대 정신 살아있었다"

머린코341(mc341) 2015. 11. 19. 22:02

<연평도포격 5년> ②현장지휘관 "해병대 정신 살아있었다"
 
대응사격 지휘 김정수 소령 "도망친 병사 한 명도 없었다"
북한 포격에 거침없는 대응사격…"우리가 승리한 전투다"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대응 사격한 김정수 소령

(서울=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김정수(34) 해병대 소령이 19일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해병대 제공 >>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적의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제가 '사격 준비!'라고 명령하니 부대원들이 주저 없이 자주포를 포상(포를 배치하는 진지) 밖으로 전개하고 제 위치를 잡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이것이 해병대 정신이다!'라고."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김정수(34) 소령은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김 소령은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연평도 주둔 해병대(연평부대) 포7중대장이었다. 포7중대는 K-9 자주포 4문으로 북한군의 기습 도발에 맞섰다.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되기 직전 김 소령은 지하 상황실에서 연평부대의 해상사격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갑자기 '꽝'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쿵, 쿵, 쿵' 하며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이 이어졌다.


북한군의 공격을 직감한 김 소령은 연병장으로 뛰어나갔다. 곳곳에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쉭, 쉭, 쉭'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포탄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연평도 주민들의 꽃게 저장고도 포탄에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K-9 자주포 6문 가운데 2문은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북한군이 K-9 자주포 진지를 노린 것이 분명했다. 자주포 1문은 훈련 중 불발탄이 포신에 끼는 사고로 당장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급히 상황실로 돌아온 김 소령은 연평부대장에게 상황 보고를 하고 방송으로 부대원들에게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김 소령은 부대장 지시에 따라 '사격 준비' 명령을 내렸다. 자주포 3문에서 '사격 준비 완료' 보고가 들어왔다.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구요. 부하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반가워서요. '좋다, 이제 마음껏 싸워보자!' 하는 의지가 치솟았죠."


김 소령의 '쏴' 지시에 대응 사격이 시작됐다. 북한군이 첫 포격을 한 지 13분 만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해병들은 거침이 없었다. 자주포 3문으로 북한군의 무도 진지를 향해 50발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도 부대원들은 자주포에 붙은 불을 끄고 자주포 1문을 발사 가능한 상태로 복구했다. 대포병 레이더는 북한군의 도발 원점이 개머리 진지라는 것을 탐지해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북한군이 2차 포격을 시작하자 포7중대는 자주포 4문을 개머리 진지 쪽으로 돌려 30발을 대응 사격했다.


김 소령은 말로만 듣던 '해병대 정신'을 눈으로 봤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몸을 아끼지 않고 적과 싸우며 전우를 보살폈다. 위병소에 있던 병사가 대응 사격에 동참하고자 포연을 헤치고 자주포 진지로 뛰어가기도 했다.


방탄모 외피에 불이 붙은 것도 잊은 채 대응 사격에 몰두하는 투혼을 보여준 임준영(26) 당시 상병도 포7중대원이었다.


북한군이 자주포 진지를 노렸지만 다행히 포7중대원들은 작은 부상한 것 말고는 모두 무사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김 소령은 연평부대원인 서정우(당시 21) 하사와 문광욱(당시 19) 일병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 하사와 문 일병도 전투 준비를 하던 중 북한군의 포탄 파편에 맞았다.


김 소령은 해병대와 연평도 주민의 진한 우정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어느 주민이 대피를 위해 연평도를 떠나며 '연평도를 꼭 지켜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김 소령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평도에 남은 일부 주민은 부대를 찾아와 장병들에게 밥을 지어주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5년이 되는 동안 김 소령은 연평부대를 떠나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거쳐 지금은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 5월에는 옛 전우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11월 23일을 맞이하는 김 소령의 감회는 어떠할까.


"연평부대원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 싸웠는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죠. 연평도 포격 도발은 명백히 우리가 승리한 전투인데…."


김 소령은 지난 1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안장식에 참석했다. 서 하사와 문 일병은 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에 묻혀 있었으나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 바로 옆에 새로 만들어진 묘역으로 이장됐다.


"국민이 서 하사와 문 일병의 희생을 잘 기억해줄 것 같아 기분이 좋았죠. '서북도서를 지킨 영웅들이 이제 한자리에 모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연합뉴스] 201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