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연평도 포격도발 5주기
▲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화제가 되었던 사진.
북측의 포격을 받은 해병대원들이 K-9 자주포로 긴급 대응 사격을 준비하고 있다.(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2010년 11월 23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온한 이 섬에서 느닷없는 포격음이 들려왔습니다. 북한군이 이 섬을 향해 수십 발의 포탄을 발사한 것입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지 고작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 군과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전 협정 이후, 대한민국의 영토가 직접적인 포격 공격을 받아 민간인이 사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오늘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연평도 포격도발 5주기를 맞아, 그 날의 일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 북한의 무분별한 포격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진 연평도의 민가.(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민가까지 무차별로 포격하다
사건 당일 대한민국 해병대는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육·해·공군·해병대의 합동 훈련(호국훈련)의 일환으로, 1996년부터 매년 실시된 연례적인 훈련이었습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섬의 서남쪽 해상을 향해 4시간에 걸쳐 3,96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훈련이 끝난 뒤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북쪽으로부터 수십 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발사된 포탄은 군 시설은 물론 민가들까지 공격했습니다.
북한군 포격은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습니다. 14시 34분 경 시작된 첫 번째 포격은 150여 발의 포탄이 발사되었고, 이 중 60여 발이 연평도에 떨어졌습니다. 2차 포격은 15시 12분부터 총 20여 발이 발사되었는데, 20발 모두 연평도를 타격했습니다. 즉 북한은 1차 포격 후 탄착점을 수정해 재차 치밀하게 공격을 가해온 것입니다. 우리 해병대원들은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재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첫 타격을 받은 지 13분 후 지난 뒤 대응사격을 실시, 우리 측에서도 북측을 향해 80여 발의 포탄을 발사하였습니다.
▲ 포화로 불타고 있는 연평도를 지켜보는 주민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연평도의 평화를 깨뜨린 북한의 도발
오후 14시 34분부터 15시 41분까지 약 한 시간가량 지속된 북한의 공격으로 820여 가구가 거주하는 대연평도 남쪽이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주민 밀집지역의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등 공공시설 8곳이 포격을 당했다는 점에서 이 도발이 북한의 철저한 사전 계획 하에 이뤄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날 포격으로 인한 우리 측 피해는 상당했습니다. 군의 경우 해병대원 2명(故 서정우 하사, 故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민간인은 2명(故 김치백, 故 배복철)이 사망하고 44명이 다쳤습니다. 연평부대 건물을 포함해 총 326동의 건물이 파손되었으며, 포화로 산불이 발생해 47ha의 산림이 전소되었습니다.
포격도발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한동안 섬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인천 등으로 피란한 주민들은 찜질방이나 친인척 집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인천 경기 지역 학교로 전학하였습니다. 북한의 무분별한 도발이 평화롭던 연평도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입니다.
▲ 우리 군의 K-9 자주포 발사 훈련 모습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근거 없는 북한의 주장과 국제사회의 규탄 성명
북한은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 “남측이 먼저 북한 영해에 포탄을 발사했다”라는 엉뚱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훈련에 참여한 포대를 정확히 명중 타격해 응당한 징벌을 가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연평도 포격이 의도된 조준 공격임을 시인한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란, ‘북방한계선(NLL)’과는 달리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철저히 우리 영토 내에서 방위훈련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무방비 상태인 민간 지역에까지 방사포를 동원해 포격을 퍼부은 것은 결코 ‘자위권’ 행사라고 보기 힘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 역시 일제히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이번 공격은 6·25전쟁이 끝난 후 가장 심각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 해병대 연평부대의 야간 전차 사격 훈련 모습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절치부심한 우리 군의 대북 대비태세
연평도 포격도발로 전사한 해병대 소속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장례는 해병대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화장된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이들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북한의 서북도서지역 무력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우리 군은 최초의 합동작전사령부인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이하 서방사)’가 창설되었습니다. 2011년 6월 15일 창설된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육·해·공군 장교들이 모두 배치되어 육상·해상·공중 상황을 전천후로 관리하는 부대입니다. 특히 해병대사령관이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을 겸직하며 해병대의 역할 강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서방사 창설 이후 이 지역에 병력 1,200여 명을 추가 배치했으며 작전개념도 발전시켰습니다. 기존의 북한 기습상륙 저지라는 방어 개념에서 유사시 북한 측 기지 선제타격이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작전이 변화된 것입니다.
대응화력도 대폭 개선시켰습니다. K-9 자주포,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 등의 무기·장비들이 추가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감시 장비 강화와 진지 보강 작업도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우리 군은 ‘서북도서 요새화 작업’을 통해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원천적으로 제압해 무력화시키겠다는 굳건한 안보 의지를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 밤낮없이 임무에 여념이 없는 연평부대 장병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한 가지, 마음 따뜻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도발이 일어난 직후 육·해·공군 모집병 지원율이 크게 상승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이후에도 예비군들이 SNS 상에 군복과 군화 사진을 올리며 조국 수호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오늘도 연평도 포격도발 5주년을 앞두고 전역을 연기한 해병대 병사 3명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또한 연평도 포격도발을 경험했던 해병대 천중규 중사(당시 하사)가 자원해서 연평도로 돌아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연평도 포격도발은 뼈아픈 상처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도 대한민국 청년들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도 밤낮없이 조국 수호에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동고동락]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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