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2년) - 도망병을 막기 위해 자결한 정영옥 소위
해병제1연대가 중동부 전선으로부터 장단자구로 이동한 지 약 3개월이 되던 52년 6월 9일이었다. 그 당시 연대 예비대로 있던 2대대에서는 새로이 보충 받은 신병들을 전선의 생리에 적응시키기 위한 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재교육대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 중 3명의 도망병이 발생하는 바람에 교육대에서는 교육대장 정영옥 소위가 전 대원을 집합시켜 놓은 자리에서 권총으로으로 자결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었다.
정 소위는 화기중대 선임장교로 있다가 재교육대의 대장으로 임명된 장교였는데, 임무를 수행하던 중 2회에 걸쳐 도망자가 발생했을 때마다 대대장(박성철 대위)로부터 심한 힐책을 받게 되고 또한 심리적인 중압감을 느끼고 있던 그는 3번째 도망자가 발생하자 대대장을 대할 면목도 없었고, 또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어 결국 그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도망병을 막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심을 굳혔던 그는 교육대의 전 대원을 훈련장에 집합시킨 다음 띠 잔디로 쌓아 올린 나직한 구령대 위에 올라가 이런 내용의 훈시를 했다. 즉 “우리 교육대에서 도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해병대의 전통과 명예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 그는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한 다음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45구경 권총을 뽑아 들더니만 총구를 심장에 갖다 대자마자 방아쇠를 당겼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지자 대원들은 휘둥그레진 눈을 부릅뜨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쟁기간 중 일선지구에서 도망병이 발생했던 사례는 허다했다. 그러나 도망병 발생에 대한 책임을 통감했던 나머지, 그리고 죽음으로써 도망병을 막으려 했던 지휘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과문의 탓인진 몰라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연대본부에서는 고인의 애군심과 투철한 책임감을 기리기 위해 일계급 특진을 상신했고, 그 당시 연대본부 정훈에서 발행하고 있던 ‘해병속보’에선 그 화제를 특필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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