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2년) - 36고지에 매몰된 성소위와 김중사
52년 9월 6일 오후 6시를 기해 중공군 포대에서는 우일선 대대(당시 3대대)의 최전방 전초진지인 36고지와 67고지 및 그 후방에 있는 33진지와 31진지 등 전초인지에 수백 발의 포탄을 퍼부은 다음 1개 소대의 병력으로 경의선 철도 우측방에 있는 67고지를 포위하는 가운데 1개 중대의 병력을 36고지(철도 좌측방)에 투입시킴으로써 36고지에 배치되어 있던 10중대 2소재 장병들은 진지가 쑥밭이 된 상황 하에서 그 적병들과 저철한 백병전을 벌였다.
그런데 백병전의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해포대(海砲隊)에 박스미인 (BOX MEIN․진내사격)사격을 요청함으로써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해 위기를 모면했던 10중대 1소대장 성관식(成寬植) 소위는 적 포대에서 재차 집중사격을 가하는 와중에 소대 선임하사관 김복현(金福鉉) 중사와 함께 붕괴된 소대장 벙커 속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36고지를 유린한 중공군이 67고지로 가 버린 사이에 김복현 중사는 대검으로 벙커 윗쪽에 숨구멍을 뚫어 그 구멍을 통해 고지 위에 나타난 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러 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다음 중대본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 목재 밑에 깔려 있는 무전기를 찾았다. 그러나 무전기는 안테나가 부러져 이빨로 껍데기를 까낸 유선줄로 가까스로 기능을 살려 뒤늦게 의식을 회복한 소대장으로 하여금 중대본부와 교신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무전기를 들고 “중대장님 1소대장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놈들한테 당했습니다. 구원을 요청합니다.”하고 말했던 성 소위는 기가 찬 일을 당했다. 왜냐하면 전투단 부단장 남상휘 중령이 만약 성 소위가 생포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아군의 지원병력은 전멸을 다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감해진 10중대장 노원군 중위는 “성 소위 혹시 놈들한테 붙잡혀 있는 건 아니요?”하고 묻기까지 했는데 중대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성 소위는 “중대장님 사람을 그렇게도 못 믿으십니까?”하며 엉엉 울었고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중대장은 연대본부 상황실로 연결된 유선을 절단시켜 버린 다음 대대장(안창관 소령)에게 지원병력을 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하여 대대장은 전차중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가운데 김동창 소위가 지휘하는 9중대 2소대를 36고지로 보내어 잔류병들과 합세하여 진지 복구작업과 급편방어에 임하게 했는데 유선을 끌면서 걸어서 간 9중대 2소대의 지원병력이 그 이튿날 동이 틀 무렵 36고지 밑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는 참담한 몰골을 한 성 소위와 김복현 중사를 비롯한 수명의 대원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모든 것이 박살이 난 그 고지 주변에는 피아군의 시체가 너절하게 깔려 있었다.
36고지에서 생매장을 당할 뻔했던 그 김복현 중사(병1기)는 특히 924고지 탈환작전 때 적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놈 도망친다, 돌격 앞으로!-” 하고 소리쳐 그 소리에 놀란 적병을 달아나게 함으로써 9중대 진중에서 “와아-”하는 돌격의 함성이 일어나게 한 맹수와도 같은 용사이며, 그의 가슴에는 2개의 을지무공 훈장이 빛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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