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2년) - 기발한 묘안을 짜낸 김동창 소대장
52년 9월 7일 아침 모든 것이 박살이 나 있는 36고지에 도착하여 10중대 1소대장 성관식 소위와 임무를 교대했던 9중대 2소대장 김동창(金東昌) 소위는 급편방어를 하면서 그 날 밤에 동원이 된 1개 소대의 공병과 100여 명의 노무자들(KSC)이 진지 보수공사를 완료하자 그로부터 10여 일 간 그 고지를 방어했는데 그 기간 중 그는 슬기로운 부대 지휘로 다음과 같은 어려가지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첫째로 후방에서 진내로 진입하는 통로에 끌어 놓은 유선이 포탄에 의해 번번이 절단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그는 그 유선을 통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끌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었다.
즉 그는 뇌관을 빼낸 총류탄에 유선줄을 비끌어 맨 다음 그 총류탄을 통로가 아닌 지대로 발사함으로써 대개의 경우 아침에 가설해 두면 일몰 전에 끊어져 버리기 일수인 유선을 10여일 간이나 지탱할 수 있게 했고, 또 강 건너편 적진 뚝에서 간간이 아군 진지를 저격하여 희생자를 내게 하는 적병들을 저격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었던 그는, 예광탄을 발사하여 그 뚝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한 다음 4정의 BAR를 고정배치 해놓고서 아군 저격병으로 하여금 적병들이 이쪽을 저격하기 위해 다소곳이 고개를 내밀 때를 기다려 방아쇠를 당기게 한 끝에 어느 하루는 중대본부로부터 수 명의 중공군이 사살되었으니 전과 보고서를 내라는 기별이 와 그 영문을 알아보았더니 적진 상공을 정찰비행한 미 해병대의 정찰기에 의해 그러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주간에는 눈을 붙이고 야간에는 간단없이 진지를 순찰했던 김동창 소대장은 순찰 도중 수상쩍은 기척이 들리기만 하면 자신이 늘 대동하고 있던 60밀리 박격포 사수로 하여금 지체없이 소리가 나는 방향에 포탄을 발사케 하여 적이 기도하는 바를 사전에 좌절시킴으로써 모든 나날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대에서는 뜻밖에도 귀한 손님(귀순자) 한 분을 맞게 되어 경사가 일어났다. 날이 밝은 후 강(사천강) 이쪽 기슭에서 귀순병으로 보이는 중공군이 두 팔을 쳐들고 다가오기에 지뢰가 매설되지 않은 곳으로 안내하여 후송을 했더니 뜻밖에도 3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소대장은 소대 선임하사관 의논하여 나이가 가장 많은 하사관과 분대별로 병 1명씩을 선발하여 인천으로 특박을 보내면서 귀대할 때 그 상금의 일부로 라디오 한 대를 구입해 오도록 지시했는데 그들이 구입해 왔던 그 라디오는 소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유용하게 쓰여졌다.
김창동 소위는 그 라디오로 국방부 보도과의 전황 보도도 들을 수 수 있었지만 때로는 특히 대원들의 코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장단지구 전선에 대한 중공군 선무공작대의 대남 허위 방송을 대원들에게 들려줌으로써 대원들의 사기와 적개심을 고무했는데, 어느 하루는 국방군 해병대의 탱크 몇 대를 파괴했느니 비행기를 몇 대 격추시켰으니 하는 등의 전혀 터무니 없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일 외에 36고지의 2소대에서는 어느 날 아침 간혹 자두를 따먹으러 가는 고지 좌측방의 민가에 물을 길르러 갔다가 우연히 중공군 부대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다는 15-16세 가량의 한국인 소년을 발견하여 그를 연행해 왔는데, 김창동 소대장은 포병관측장고 황두하 소위와 의논하여 그 소년을 고지 위에 올려놓고 그가 알고 있는 중공군 부대의 중대본부 1개 소대와 취사장을 손으로 가리키게 하여 그 지점으로 포탄을 유도하는 등 10 여일 후 11중대 1소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주 저항선으로 복귀할 때까지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한 효과적인 부대 지휘로 많은 실적을 거둔 유능한 소대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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