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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에 대항하는 한국형 카빈 K2C

머린코341(mc341) 2016. 5. 1. 19:09

M4에 대항하는 한국형 카빈 K2C


▲ 한국형 카빈 K2C소총 <출처: 양욱> 


90년대 이후 군번으로 군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익숙한 총기가 있다. 국산 제식 소총인 K2 소총이다. 이미 30년 가깝게 육군의 주력 소총 자리를 지켜온 K2에도 최근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K2C와 K2C1의 등장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방위산업의 출발점인 소총 공장이 건립되다


우리 군은 창군 직후 일본군이 남기고 간 아리사카(有坂) 99식 소총으로 무장해야만 했다. 이후 6.25 전쟁 중에 긴급히 미군으로부터 M1 개런드 반자동소총, M1/M2 카빈 등의 총기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1958년부터 북한군이 AK-47 소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남북간 소총 화력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공업기반을 갖춘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력이 앞서 있었다.


소총의 국산화는커녕 부품의 유지 보수조차 힘들었던 우리는 방위산업을 키우면서 소총 등의 기본 화기 개발을 우선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군사원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소총 생산에 할애했다. 이미 1968년부터 미군의 최신 주력이던 M16 소총을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한미 간에 합의가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콜트사로부터 총기생산에 필요한 모든 노하우와 공작기계를 지원받아 소총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원조 증액에 난색을 표하며 차일피일 미룬 탓에 1971년 3월 13일이 되어서야 콜트사와 계약이 체결되었다.


▲ 우리 군은 M16소총의 생산공장을 국내에 건설하면서 방위산업을 총기개발로부터 시작했다. <출처: 국방부> 


새로운 소총 공장은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의 산속에 지어졌다. 이 시설은 북한 공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도록 3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건설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몸소 부지를 정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렇게 지어진 국방부 조병창은 1973년 11월 29일 완공되어 74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이 조병창은 원자재 투입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한 곳에서 끝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로 단순히 콜트사의 M16 소총을 면허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총, 기관단총, 기관총, 저격총 등 다양한 총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기반이 되었다.


특히 국방부 조병창은 소화기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정밀기계공업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창원기계공단 설립의 모델이 되었으며, 금오공고 등 정밀기계공업의 기술자 양성을 통해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국방부 조병창은 현재 S&T모티브라는 민간기업으로 변신한 상태다. 즉 국방부 조병창이 1983년 대우그룹에 인수되어 대우정밀이 되었다가, 이 회사가 2006년 S&T그룹으로 인수되면서 S&T대우가 되었으며, 2012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971년의 번개사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그야말로 소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산 화기의 시초, K1 기관단총


국방부 조병창은 M16 한국형을 약 60만 정 생산한 후에 면허생산을 종료하게 되었다. 60만정이면 당시 70만 병력을 간신히 무장시킬 뿐 예비군까지 무장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부족분을 새로운 국산 소총을 만들어 보급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미 신형 국산 소총은 M16을 면허생산하기 이전인 1972년부터 연구가 시작되었었다. “군의 기본무기인 소총은 우리 자체기술로 개발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 우리 군 최초의 국산화기는 바로 K1 기관단총이다. K1은 나팔형 소염기를 채용하여 소음과 화염이 심하여 개량할 필요가 있었다. <출처: 국방부>


우선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B형 소총을 바탕으로 XB1 모델이 등장했고, 이후 M16 소총을 바탕으로 한 XB2·3·4·5 등의 모델이 등장한 것이 1974년까지의 일이었다. 1975년부터는 XB6와 6A가 개발되었는데, 이 모델들은 이전 모델들과는 달리 7.62mm NATO탄을 사용했다. 이렇게 국산 소총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K1 기관단총이었다.


국산 소총을 개발하던 당시에는 이미 M16 소총이 지급되고 있었다. 사실 우선순위는 M16 소총으로 대체되지 않는 무장을 한 부대들이었다. 이에 따라 선정된 대상이 바로 기관단총이었다. 당시 특수부대가 사용하던 M3 그리스건을 대체할, 특수전 요원이나 차량탑재 요원의 총기로서 개발된 것이 바로 K1이었다.


당시의 기관단총은 권총탄을 사용하여 사거리가 100m에 불과했지만, K1은 M16 소총과 똑같이 KM193 5.56mm NATO 탄환을 사용함으로써 무려 250m까지 교전이 가능해졌다. K1은 1980년에 개발이 완료된 후 1981년부터 일선배치가 시작되었다. 사실 최초로 만들어진 국산 모델이기에, 완전히 독자적인 내부작동방식을 쓰는 대신, 총기의 작동방식으로는 M16과 거의 유사한 가스직동식이 채택되었다.


▲ K1을 개량한 K1A가 본격적으로 특전부대와 기갑부대 등을 위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K1A는 당시로서는 우수한 총기였지만 30년 가깝게 개량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출처: 국방부> 


최초에 등장한 K1은 나팔형 소염기를 장착하여 반동제어나 소음, 총구화염이 매우 컸다. 이를 개량하기 위하여 ‘총구앙등억제 소염기’를 채택한 K1A가 등장했다. 또한 K1 초기형의 아랫총몸 힌지는 사격 시에 충격으로 자동 해제되면서 총몸이 분리되어 사수가 머리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힌지에 풀림방지 고리가 추가되기도 했다. 우리 군은 가벼운 무게에 상당한 파괴력을 갖춘 K1A를 각급 부대에 지급하여 미국보다도 빨리 카빈형 자동소총을 제식지급하게 되었다.



M16과 AK의 장점을 합친 K2가 등장하다


K1A의 문제점은 가스직동식의 작동방식에 있었다. M16도 채택하고 있는 이 방식은 우선 탄매(발사 후 탄환의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노리쇠 등 작동 부위에 쌓이면서 총기의 기능 고장을 일으키기 쉽다. 또한 노리쇠에 직접 열이 가해지는 방식으로 교전이 치열해질 경우 노리쇠가 열에 의해 파손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미군의 M16이나 M4의 경우, 최근 대테러전쟁에서 노리쇠 파손이 커다란 이슈가 되자 아예 강화형 노리쇠를 새롭게 만들면서 개량을 거듭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AK-47 소총의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택한 신형 소총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바로 K2다. 개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국산소총 시험제작 모델인 XB-6/6A을 개량하여 5.56mm를 사용하도록 한 XB-7이 1977년 만들어졌다. 1980년에 이를 개량한 XB-7B가 등장했고, 이를 개량한 XB-7C가 XK2 소총이 되었다가 제식화되면서 K2가 된 것이다.


K2는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야전 신뢰성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기존의 5.56mm 소총이 갖는 장점을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격 시 정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이물질에 의한 오염 문제 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M16과 AK의 장점만을 합쳐 놓은 총이란 호평을 받기도 했다.


▲ K2는 한국인의 체형과 4계절의 자연환경에 맞는 우수한 소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K100탄을 사용할 수 없는 K1A가 여전히 보급되고 있어 K2까지 구형탄환을 사용함으로써 제 성능을 발휘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출처: 국방부> 


또한 K2에는 K100이라는 신형 5.56mm 탄약이 채택되었다. KM193탄을 대체할 차세대 주자로 등장한 K100탄은 NATO의 새로운 표준으로 선정된 SS109 규격에 맞춘 탄환이다. 즉 1초에 5천 번 이상 총알을 회전시켜야 더욱 안정적으로 발사가 되는데, K2에서는 7.3인치에 1회전이라는 강선회전율을 달성했다.


12인치에 1회전인 M16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먼 거리를 쏠 수 있게 되어 유효사거리가 600m로 증가했다. K2 소총은 우리 군의 기본화기로 1985년부터 보급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약 80여만 정이 보급되었다. 또한 2017년까지 약 10여만 정이 더 공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K2는 K1처럼 3점사 기구를 채택했다. 미군의 경우 연발을 없애고 3점사를 채택하여 일선에서 혼란이 많았지만, 우리의 소총들은 단발-연발-점사를 모두 채택하여 필요에 따른 활용이 가능했다. 이미 1980년대 초중반에 개발된 제식화기에 점사기능을 채택하여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최신 기능을 수용했다.

K2는 또한 한국인의 체형에 맞도록 개발된 총이기도 하다. 탄알집을 제거했을 때의 무게가 3

.26kg 수준이다. 전체 길이는 97cm이지만, 개머리판을 접으면 73cm까지 줄어든다. K200 장갑차 등에 탑승하는 기계화 보병용 소총으로도 손색이 없다. K2는 K201 유탄발사기를 장착하는 형태로도 생산되어 보급되었다.



시대에 뒤처져 현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다


K1A와 K2는 많은 부품이 호환된다. 심지어 서로 윗총몸과 아랫총몸을 바꿔 끼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두 총기는 작동방식부터 사용 탄환까지 다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K1A는 가스직동식에 KM193탄환을 사용하지만, K2는 가스피스톤 방식에 K100탄을 사용한다. 결국 K1A와 K2는 군수지원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했다.


과거에 M16이 주력 소총일 때는 상관없었지만, K1A와 K2가 뒤섞여 일선에 배치되자, KM193과 K100탄이 모두 보급되어야만 하는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강선회전율이 달라 K1A에 신형 K100탄을 사용하면 총알이 위아래로 흩뿌려졌다. K2에 KM193 구형탄을 쓸 경우도 성능이 저하된다. 결국 K1A를 위해 구형탄을 별도로 보급해야 되는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구형탄을 쓰다 보니, K1A의 유효사거리는 250m에 불과했다. 과거에 기관단총으로서 250m를 교전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성능이었다. 그러나 K1A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카빈으로 구분되며, 무려 500m까지 교전이 가능한 M4와 비교할 때 확실히 성능이 떨어지는 편에 속하게 되었다.


▲ K2는 최근 윗총몸 상부에 조각레일을 장착하고 PVS-11K와 같은 도트사이트를 운용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확장성이나 부가장비의 품질 등에 대해 일선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출처: 국방부> 

 

더 큰 문제는 소총의 확장성이었다. 현대의 소총들은 피카티니 레일을 채택하여, 조준경이나 웨폰라이트, 레이저 표적지시기 등 다양한 장비를 장착할 수 있다. 그러나 피카티니 레일이 보편화된 2000년대가 되어서도 K1A와 K2는 레일 장착을 위한 설계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업체들에서 K1A용 레일이 제작되어 일선부대들에 보급되었지만 극히 일부로 한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개선의 여지가 있음에도 특전사 같은 정예부대들조차 계속 K1A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최정예 특수부대들도 M4 같은 신형 카빈을 구매하려 할 때마다 5.56mm 국산 소총이 있음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고 정예요원들이 자신의 월급으로 레일이나 M4용 개머리판 같은 장비를 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사제장비’로 취급되어 불이익을 받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K2C가 업체 주도로 탄생되다


▲ K2C는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하는데, 사진의 K2C는 세라코트라는 특수도장으로 총기의 부식을 막고 도색효과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양욱> 


이러한 일선의 문제는 수출 전선에서도 반복되었다. 세계적으로 카빈형 총기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미군은 M16 소총을 카빈으로 만든 M4 카빈을 주력소총으로 채택했다. 그러자 수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소총의 구매를 원했는데, 대부분 M4 카빈을 염두에 둔 구매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작업체에서 대표 주자로 내세운 K1A는 5.56mm 구형탄에다 피카티니 레일도 없었다. K1A와 KM193탄을 결합하면 유효사거리가 250m에 불과하지만, M4소총과 M855탄(SS109에 해당하는 미군 탄환)을 결합하면 유효사거리는 500m에 이른다. K100을 사용할 수 없는 K1A는 해외시장에서 M4와 대결할 수 없었다. 결국 해외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K2의 단축형을 업체 주도로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K2C이다.


K2C의 최초 모델을 보면 K2의 윗총몸에, K1A의 아랫총몸을 결합한 모습이었다. 윗총몸은 총열 길이를 12.2인치(310mm)로 줄이고 피카티니 레일을 장착했다. 아랫총몸은 K1A이지만 기존의 와이어식 개머리판을 제거하고, 데브그루 사의 어댑터를 채택하여 미군의 M4식 개머리판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양산형에서는 아랫총몸이 K2용으로 다시 바뀌어 M4용을 채택하면서도 접을 수 있게 되었다. K2C는 2012년 아프리카의 말라위를 시작으로 파푸아뉴기니, 캄보디아, 이라크 등에 특수부대용으로 수출되었다.

M4에 대항하는 한국형 카빈 K2C 


K2C의 등장으로 드디어 국내에도 M4에 대항하는 카빈형 소총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구형 가늠자·가늠쇠를 그대로 채택하며, 총몸 자체에 레일이 장착되지 않는 등 K2C에도 여전히 개선할 사항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트랜드에 맞추어 무려 30년 만에 개선된 총기가 나왔다는 것은 뜻깊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K2C는 특전사에서 2014년부터 도입하고자 했으나, 예산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K2 소총에 레일과 M4용 개머리판을 적용한 K2C1(과거에는 K2A로 알려짐)이라는 신형 소총이 올해부터 채택될 예정이라고 한다.



군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소총의 보급이 요구되고 있다


소총이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있다. 소총이 정확해 봐야 적을 얼마나 제압할 수 있겠냐는 뜻이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투표와 소총은 비슷’하다. 그 효용성이 사용자에게 달려 있단 뜻이다. 그래서 같은 소총이라도 특수부대나 정예부대의 소총은 더 많은 개선과 보완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은 어떤 분야건 상당히 압축적인 과정을 통해 성장해 왔다. 1960년대까지 M1 개런드를 쓰던 나라가 10년 만에 자국산 총기를 개발해 보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등 다양한 위협이 등장함에 따라 국산탄도 미사일이나 순항 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고가장비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증했다.



그 사이에 K1A와 K2 소총은 최초의 제원에서 30년째 제자리걸음을 했다. 기존 총기의 성능을 향상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총기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예산배정도 만만치 않았다. 예정대로 K2C1이나 K2C 또는 아예 새로운 소총이 배치된다면 이러한 갈증은 해소될 수 있다.


사실 새로운 소총에 대한 우리 군의 요청은 절박하다. 2023년부터는 출산인구의 자연감소로 우리 군 병력의 22%인 11만 1천여 명이 감소된다.


현재 지상군의 숫자로 남북을 비교하면 49만 5천 명 대 102만 명 꼴이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아군 한 명이 적 2명을 제압해야 전쟁에서 이긴다. 그런데 11만 명이 더 감축되면 아군 1명이 적 3명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의 기본 무기인 소총은 더욱 개량되어야만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첨단무기가 최고인 현대전이라도 결국 지상을 점령하는 건 보병이고, 그 손에 쥐어진 건 소총이다.


[유용원의군사세계] 201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