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
자유로를 한 눈에 내려다 보는 행주산성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기념제에 갔다가 주차장 입구에 위치한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를 발견했는데요.
오랜 기간 일산에 살면서 행주산성을 수차례 왔다가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던 곳인데 병무청 어머니기자단 일을 하면서 보물찾기를 하듯 발견하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이기에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산7-1번지 행주산성 입구에 있는 한국전쟁 관련 현충시설입니다. 행주산성 주차장 앞쪽 자그마한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하이얀 삼각형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궁금한 마음에 계단을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한국전 당시 해병대 행주도강을 기념하는 전첩비입니다.
한강을 조망하는 곳인데다가 자유로 아래 능곡일대와 한강 건너 수색까지 감시하는 중요한 요지인 행주산성 자리는 나지막한 덕양산이지만 서울입성을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게 하는 핵심거점지였습니다. 하여 해병대가 행주도강을 감행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더욱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을테지요.
1950년 9월 20일 한미연합 해병대가 한강을 도강하여 행주산성 125 고지를 탈취하게 됨으로 9월 28일 서울 수복의 승전세를 마련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전첩비입니다.
작전이 진행되던 1958년 9월 28일에 도강지점이기도 한 행주대교 서원마을에 건립하였습니다. 이후에 1984년 해병대사령부에서 지금의 위치 행주대교 입구에 재건립하고 정비하게 됩니다.
전적비는 두 개의 삼각형 비(碑)로 구성되었습니다. 삼각형 비가 두 개인 이유는 한국과 미국 해병대의 연합작전을 상징하구요. 삼각형 모양을 만든 것은 안정, 신념, 투지의 상징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뚫을듯한 삼각모양의 윗 부분 뾰족한 꼭지점은 한미연합군의 승전을 다짐하는 투혼을 의미합니다.
탑높이는 8m,면적은 약 80㎡입니다.
전적비입구에는 LVT(수륙양용장갑차) 1대가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끌리게 하는데요. 한미연합 해병대 작전당시 전시된 것과 같은 수륙양용장갑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습니다.
전첩비 입구 계단길에 설치된 장갑차는 작전 당시에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때 그 당시 동강하던 장갑차는 아니지만 위풍당당하게 진격하던 대한의 열혈 청춘들이 생각나는 수륙양용 장갑차이기에 승전보의 상징으로 오래오래 기억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삼국시대역사서를 살펴보면 우리네 조상들은 한강지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행주산성이 위치한 한강유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게 되는데요.
한국전에서도 행주산성 아래 한강도강에 성공했다는 것은 서울입성에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는 청신호이기도 했겠지요.
행주산성의 전략적 요충지를 입증하는 또 다른 승전보는 권율장군의 행주대첩에서도 알 수 있는데요.
군.관.민이 하나되는 애국충정으로 앞치마에 돌을 날라가며 전쟁에 함께하여 승전보를 울린 임진왜란 대첩지 행주산성, 서울을 수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에서 행주대첩과 한미연합해병대의 한강도강 전첩비가 함께 있는 이유가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수륙양용 장갑차위로 전적비가 보입니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한미해병대는 경인가도를 따라 올라와 서울로 진격을 거듭하게 됩니다.
9.15 인천상륙후 9월 19일 한강 남단에 도착을 하게 되지요.
한강을 건너 서울을 수복하여 열세를 떨어내고 역전의 깃발을 올려 함성을 울릴 단계이기도 했던 시점이기도 하구요. 한강을 건넌다는 일은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인지라 인천상륙작전에 앞장섰던 미 해병 1사단과 국군 해병 제 1연대 장병들로 구성하여 행주도강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작전 당시 사용한 장갑차는 아니지만 수륙양용장갑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을 청춘들이 생각나서 가슴에 울림이 느껴지는 현장입니다.
<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을 내려다는 자리에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권율장군이 진을 치고 있던 행주산성은 죽음을 각오하고 배수진을 쳐야할 만큼이나 절대절명의 시간이었습니다.
1592년 정명가도를 외치며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왜군은 명나라 원군, 조선 관군의 반격, 의병봉기로 후퇴해야 하는 상황에서 명나라에게 추격당하다가 벽제관 전투에서 대파하고 행주산성을 공격하게 됩니다.
행주산성을 단숨에 함락시키고 한양을 탈환을 저지하려는 왜군의 거센 기세에 대항해야 하는 역전의 장수 권율장군은 부녀자들까지 나서서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왜군을 물리치게 됩니다.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9월 20일 새벽 미명에 행주나루 건너 개화산 기슭 한강에서 도하작전개시!!!
치열한 혈전으로 한미해병대 도강작전 성공!!
9월 28일 서울탈환,수복성공!!
그 날의 전공을 기리는 한미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행주산성을 마주하는 언덕에 위치한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
<수륙양용 장갑차>
행주산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축성되어 한양을 지키는 요새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서해에서 한강을 통해 서울로 진입하려는 세력을 봉쇄하는 전략지였습니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군은 한강의 합류지점 오두산성에서 차단하고, 그 아래 행주산성에서 다시 막아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의 행주대첩과 한국전에서의 한미해병대 행주도강이 무관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행주산성과 행주도강 전첩비가 위치한 고양시는 서울로 들어가는 동남쪽 관문입니다. 예부터 수도 한성을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한강을 접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지리적인 쟁탈전이 많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 6.25 전쟁 당시 해병대의 한강도강 작전, 경인선 통학생을 중심으로 한 태극단 결성 등.. 지리적인 특성으로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이나 유물이 많은 곳이라는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병무청 청춘예찬을 통해서 고양시의 전적지를 하나하나 소개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춘예찬]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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