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과 맞서다
(1) 폭발물처리(EOD) 요원
극도의 긴장감에 땀은 비 오듯…영화 같았던 훈련
순간 방심은 생명과 직결…목숨 걸고 폭발물 제거
훈련은 전투다. 군인이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과 싸워 이기는 것뿐이다. 강도 높은 훈련만이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전사를 만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군은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강도 높은 훈련으로 실전을 대비하고 있다.
강한 훈련의 현장. 그 속으로 국방일보 기자가 직접 들어간다. 국방일보는 독자 여러분께 더욱 생동감 있는 훈련 현장의 모습을 전해드리기 위해 기존 연재하던 ‘병과 체험’ 코너명을 ‘안승회 기자의 필드 오브 밀리터리’로 바꾸고 취재 범위를 병과에서 모든 훈련으로 확대했다. 매달 한 번씩 연재되는 이 코너를 통해 기자가 직접 훈련을 체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날것 그대로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예정이다.
대망의 첫 회는 육군11탄약창에서 진행된 폭발물 제거 훈련 체험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을 마주한 채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에 맞서 목숨을 걸고 폭발물 처리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처리(EOD)반 일일 요원이 된 기자의 생생한 훈련 현장을 소개한다.
안승회(오른쪽) 기자가 EOD 로봇이 보내는 영상을 모니터로 주시하면서 무전을 통해 폭발물 대피 경보를 외치고 있다. 사진=양동욱 기자
지난 2013년 미국에서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폭발물 테러는 아직도 지구촌 사람들에게 끔찍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마라톤 대회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폭발물은 가정용 압력솥으로 만든 것이었다. 테러 현장에서는 배터리와 전선이 연결된 기폭장치와 회로판, 전기장치 파편 등이 함께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압력솥 안에 금속 파편과 못, 쇠구슬 등이 가득 채워졌던 것으로 분석하고, ‘크레모아(클레이모어)’와 유사한 파괴력을 가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압력솥 폭탄을 비롯한 모든 ‘사제폭발물’을 통틀어 급조폭발물(IED)이라고 한다. 파괴와 공격을 목적으로 폭발성 있는 부품을 결합해 인위적으로 급조한 모든 폭발물을 총칭하는 용어다. IED는 제작이 쉽고 은닉이 용이해 작전유형에 따라 유연한 활용이 가능한 만큼 매우 위협적인 무기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하고 있고, 북한은 대남테러 위협을 노골화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 군은 육군군수사령부 예하 탄약지원사령부에 폭발물처리(EOD)반을 두고 다양한 폭발물 테러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폭우가 시원하게 쏟아진 뒤 화창한 날씨를 보인 6일 오후 1시, 기자는 EOD반의 폭발물 제거 훈련에 도전하기 위해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육군11탄약창 폭발물처리장을 찾았다. ‘EOD’는 ‘Explosive Ordnance Disposal’의 약자다. 단어 그대로 EOD반의 주 임무는 폭발물 처리다. EOD반은 모든 종류의 폭발물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추고, 일정 기간의 훈련과 많은 경험을 통해 고도로 숙련된 군인으로 구성돼 있다.
촌각을 다투며 뇌관을 제거해 폭발물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EOD 요원의 멋진 모습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EOD 로봇을 이용해 폭발물을 제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로봇을 쓰기 어려운 경우 방폭 담요 등을 이용해 폭발물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 제거하고,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 폭발물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폭파하기도 한다. 그마저도 불가능할 경우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이날 훈련에는 25년 경력의 베테랑 폭발물처리관 홍진용 원사가 함께했다. “안전 절차를 잘 따라주시고 침착하게 행동하면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를 안심시켰다. 폭발물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 때문에 긴장한 모습을 감출 수 없었던 기자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홍 원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훈련에 앞서 그는 한 시간에 걸쳐 이론 교육을 진행했다. “매 순간 생명을 담보로 임무 수행을 하는 EOD 요원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또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한번 결정을 했으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홍 원사는 교육을 통해 ‘사명감’과 ‘담력’을 강조했다.
폭발물 제거 훈련 체험을 위해 EOD 슈트를 착용한 본지 안승회 기자가 방호 헬멧을 들고 서 있다. 사진=양동욱 기자
30㎏ 슈트
땀은 뻘뻘, 걸음은 뒤뚱뒤뚱…물포총 발사해 폭탄물 제거
장소를 옮겨 이번엔 직접 폭발물을 제거하는 훈련에 도전했다. 특정 차 안에서 폭발물 의심 물체가 발견된 상황. 로봇이 진입하기 어려워 사람이 직접 폭발물을 처리해야만 했다.
현장을 탐색하기 전 안전을 위해 먼저 EOD 슈트를 착용했다. 무게 30㎏에 달하는 슈트는 착용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EOD반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슈트를 착용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호 헬멧을 착용하자 시야가 급격히 좁아져 불편했고 서서히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헬멧에 연결된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외부 공기가 유입되면서 김 서림이 사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도 버거운 상황에서도 폭발물은 처리해야 했다.
수류탄 1발의 방호 능력을 갖춘 육중한 슈트를 입은 채 뒤뚱뒤뚱 걸으며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차 문에 부비트랩 설치가 의심되는 상황. 청테이프를 앞뒤 문에 부착해 문이 활짝 열리지 않도록 고정한 다음 문 손잡이에 갈퀴 모양의 공구를 걸고 로프를 길게 연결했다. 안전이 확보될 만큼 멀리 떨어진 뒤 로프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문을 살짝 열었다. 다행히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거대한 몸집을 한 기자의 동작은 마치 느리게 돌아가는 화면처럼 느껴졌다. 다시 차로 다가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안을 살폈다.
부비트랩이 없음을 확인한 기자는 차 문을 활짝 열고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했다. 드디어 뒷좌석에서 의심스러운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X선 촬영기를 이용해 이 물체를 촬영하고 모니터로 판독한 결과 예상했던 대로 폭발물이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혼미해져 가던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목표에 집중했다.
기자가 폭발물을 제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29㎜ 무반동 물포총. 순간적으로 강한 압력의 물을 발사하는 이 총은 1㎜ 두께의 철판을 뚫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순서에 따라 조립한 물포총을 폭발물 앞에 거치한 뒤 목표를 향해 정조준했다. 가방으로 위장한 폭발물에 어떠한 충격도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연결된 전기선을 길게 늘어뜨려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점화기 스위치를 눌러 물포총을 발사, 가상의 폭발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날 훈련은 마무리됐다.
EOD 로봇
폭발물 처리 능력 높이고 요원 안전 보장
본격적인 훈련은 임의 지역 실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상황 부여로 시작됐다. 신고를 접수한 기자는 폭발물처리관 윤덕기 중사와 함께 현장에 출동해 주변을 탐색한 뒤 로봇을 이용해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폭발물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육군은 지난 2012년부터 EOD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대테러작전 시 급조폭발물의 탐지·제거·처리 능력을 높이고 폭발물 처리 요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로봇은 그립이라고 불리는 집게 모양의 장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한다. 또 각종 카메라, 산탄총, 물포총 등을 장착하고 있어 위험 지역을 정찰하고 폭발물을 처리할 수 있으며 X선 촬영기를 이용해 원격으로 IED를 식별할 수 있다.
가방 형태의 컨트롤 박스를 펼치자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조이스틱 2개와 50여 개에 달하는 각종 스위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단에는 로봇의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미리 연습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서서히 로봇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로봇은 기자의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기동해 건물 앞에 다다랐다.
궤도 형태의 트랙을 이용해 계단도 무사히 올랐다. 굳게 닫힌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 조심스럽게 로봇의 그립을 조종해 문 손잡이를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모니터만을 보면서 조작하려니 거리 감각이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로봇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려면 6개월 정도는 숙달 훈련을 해야 한다는 홍 원사의 말을 듣고 결국 훈련에 동참한 윤 중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로봇을 조종해 문을 열고 들어가 폭발물을 확인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안승회 기자가 29mm 무반동 물포총을 폭발물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사진=양동욱 기자
사명감
국민 보호 위해 임무 수행
단 하루로 폭발물 제거 임무 체험을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일 EOD 요원이 돼 현장에서 직접 훈련을 해 보니, 강도 높은 훈련으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폭발물 테러에 대비하는 EOD 요원들의 땀방울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육군11탄약창은 세종시에 위치한 정부청사 등 국가 중요시설 폭발물 테러에 대비해 관계기관과 주기적인 방호훈련을 하면서 대민 폭발물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탄약창 관계자는 “우리 EOD반은 민·관·군·경 합동 대테러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관계기관과 활발히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요원들의 작전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며 “한미연합훈련, 특전사 IED처리 전문가 과정 교육, 육·해·공군 세미나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발전하는 폭발물 테러 대응 기술도 습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탄약창 EOD반의 활약은 수치가 말해준다. 이들은 탄약창에서 발생하는 불량탄약을 연 평균 148톤 처리하고 있으며, 충청권 작전지역 내에서 발생한 유기·불발탄약을 연 75회에 걸쳐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다.
홍진용 원사는 “두꺼운 보호복을 입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폭발로부터 100%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국민을 보호한다는 사명감으로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일보]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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