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도서 배회하는 이스라엘제 ‘어슬렁 무기’
예측 불가능 공격 바로 대응할 가미가제식 정찰무기…우리 軍 최근 관심 집중
이스라엘의 대표 ‘배회무기’인 하피(위)와 헤론(아래). [사진 제공·IAI]
백령도와 연평도를 위시한 서북도서 방어에 우리 군이 이스라엘산 무기를 집중 투입하고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을 치른 뒤 대전차로켓에서 발전된 스파이크 미사일을 바로 배치하더니 최근엔 헤론을 투입하고, 가미가제식 미사일 하피의 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세 무기는 통상 ‘Loitering Munition’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말 번역이 쉽지 않다. ‘loiter’는 ‘어슬렁거리다’ ‘배회하다’라는 의미고 ‘munition’은 ‘군수품’이니, ‘어슬렁거리는 무기’ ‘배회하는 무기’로 옮겨야 할 듯한데, 그다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기존 번역을 살펴보면 ‘배회무기’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많다. 배회와 방황은 비슷한 의미지만 무기가 방황하면 오폭할 수도 있지 않은가. 기자는 이스라엘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사를 방문해 이들 배회무기의 개발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Loitering Munition’의 시작
1993년 이스라엘은 오슬로협정에 따라 가자지구에 담을 치고 그 안을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내줬다. 그러자 자치구 내에서 패권을 장악한 하마스가 거듭해서 박격포 등을 쏴댔고, 이스라엘은 그 방어책으로 아이언 돔을 만들어냈다. 미사일보다 훨씬 작은 박격포탄을 탐지할 레이더와 그것을 맞혀 잡을 탄을 개발해낸 것. 미사일은 요격 가능해도 포탄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미국산 패트리엇보다 더 정교한 시스템이다.
이스라엘은 면적이 경북보다 약간 더 크다. 선공(先攻)을 당하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위협이 있으면 선제공격을 가해 이를 벗어난다. 이스라엘은 1973년 치른 4차 중동전을 통해 그러한 교훈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당시 전쟁은 아랍국가의 위협이 강력한데도 이스라엘이 가만히 있다 선공을 당한 경우였다.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은 총력을 기울여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세계는 선공을 가한 아랍국가들을 규탄했다. 그러자 아랍국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움직여 1차 오일쇼크를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은 다른 방식의 대응에 나섰다. 아랍국가들의 선공을 사전에 파악해 막는 방법을 개발하는 작업에 몰두한 것이다. 그리하여 IAI사가 개념을 잡아 만들어낸 게 바로 무인기(UAV)였다.
IAI사는 원격으로 조종하는 항공기(RPV)에서 UAV를 고안했다. 유인기는 조종사가 탑승할 공간이나 조종사를 위한 공기 공급 장치, 비상 탈출 장비 등을 실어야 한다.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UAV는 매우 싸게, 작게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IAI사가 만들어준 여러 UAV에 카메라 등을 실어 적진을 감시하고 촬영하는 작업을 거듭해 최적의 UAV를 선택해나갔다.
착륙한 뒤에는 적을 감시하지 못하는 UAV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드벌룬 감시라는 방식도 생각해냈다. 적정 감시는 카메라 등을 실은 애드벌룬을 활용해 24시간 주야로 지속하고, UAV는 용도를 돌려보기로 한 것이다.
주로 카메라와 함께 미사일이나 폭탄을 UAV에 탑재한 채 다니다 적이 발견되면 바로 사격하는 플랫폼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때만 해도 그 개념이 ‘Loitering Munition’, 즉 배회무기의 시작이라는 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UAV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50시간 이상 체공하는 글로벌호크나 프레데터 같은 대형 무인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작은 무인기와 무인헬기도 발전시켰는데 지금 이들은 ‘드론’으로 통칭된다. 5월 21일 미국은 무기를 탑재한 드론에서 가한 사격으로 파키스탄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아크타르 만수르를 사살했다.
IAI사도 드론을 만들지만 한 발 더 나아갔다. UAV나 드론이 하늘에서 어슬렁거리다 표적이 발견되면 가미가제처럼 날아가 자폭하게 한 것이다. 비행체도 함께 폭발하기 때문에 위력은 드론에서 사격을 가하는 것보다 수백 배 강력하다. 더욱이 UAV는 본질적으로는 비행체이므로 장애물을 피해 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적 지하진지의 은밀한 통로를 타고 들어가 부수는 작업까지 가능하다.
아이언 돔은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박격포탄과 로켓은 막아주지만 이를 쏜 기지는 파괴하지 못한다. UAV와 애드벌룬이 바로 이 공백을 도맡아 기지를 발견해내고 스파이크를 발사한다. 이에 대해 하마스는 사격이 끝나면 곧바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스파이크는 빈 땅을 두들기게 됐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대응사격에 나선 우리 해병대의 K-7이 개머리 해안의 텅 빈 논을 때린 것과 비슷한 결과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IAI사가 만든 무기체계가 하피다. UAV처럼 하늘을 어슬렁거리다 표적이 발견되면 자신이 가미가제식으로 날아가 자폭한다. 적의 대응이 있으면 요리조리 피해가며 끈질기게 파고 들어간다. 말 그대로 ‘Loitering Munition’의 본질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허무하게 대응사격을 했던 우리 군은 하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군은 서북도서 방어를 위해 갖가지 방법을 고민했다. 이스라엘 사례를 참고해 애드벌룬을 띄워봤지만 겨울철 북서풍이 너무 강해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말았다. 이후 UAV로 적을 감시하는 방식으로 기울어 이스라엘에서 헤론을 도입하게 됐고, 하피가 개발된 후에는 이 체계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NLL 몰려온 중국 어선의 비밀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들. [동아일보]
매년 6월이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로 중국 어선들이 새까맣게 몰려든다. 북한은 한국군을 압박하면서 외화 수입도 챙기고자 척당 1000만 원 남짓한 입어료를 받고 중국 어선의 NLL 조업을 허가하고 있다. 그러고는 중국 어선들 사이로 위장한 조선인민군 선박을 내려 보내는 도발을 반복한다. 우리 군은 NLL을 넘어온 선박이 있을 때만 섬 그늘에 숨겨놓은 함정을 출동시키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선다.
이러한 기동은 한발 늦을 수밖에 없지만, 하피가 있다면 즉각 대응이 가능해진다. 하피를 띄워놓고 NLL 이북을 살펴보다 북한 항구에서 나와 NLL로 접근하는 선박이 있으면 계속 추적하고, 실제로 선을 넘었을 때 바로 가미가제식으로 공격하는 방식이다.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예측 불가능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주도권을 잡으려 애쓴 이스라엘식 전투 개념이 한국군에 적용되는 셈이다.
휴전선에도 하피 같은 UAV를 띄운다면 적정 감시와 강력한 최초 공격 능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Loitering Munition’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선회무기’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 무기체계의 진가를 점차 많은 이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산 하피를 만든다면 우리의 독자성을 위해 ‘어슬렁 무기’로 명명하는 것은 어떨까.
[주간동아] 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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