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외 출전<1편> - 최강의 해병대 태권도팀

머린코341(mc341) 2017. 7. 14. 17:00

해외 출전<1편> - 최강의 해병대 태권도팀


  1958년 해군헌병대에서는 황춘성(제주) 이영생(진해) 임대선(목포) 최학선(묵호) 이병현(포항) 김형중(백령도) 강순철(금촌·사단) 등7명의 태권도 선수들(3단~5단)을 당해 지역에서 현지 입대시켜 그 지구 헌병대의 호신술 교관으로 기용한 바 있었으나 그것이 태권도부의 발족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해병대의 태권도부가 조직되어(사령부 인사근무과 소속) 태권도헙회에서 주관한 제1회 대통령기 쟁탈 전국대회에 출전했던 것은 1966년도였고, 그 1회 대회 때 아깝게도 우승을 놓쳤던 해병대팀은 해병대 출신이 아니면서 해병대에 입대한 제자들을 위해 코치를 맡아 준 이승완씨(현 9단, 태권도협회 부회장)의 지도하에 을지로3가에 있는 한국체육관(태권도부. 관장 이종무씨. 현 국기원 부원장)에서 맹훈련을 쌓은 끝에 2회 대회에서 6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5연승을 함으로써 국내 태권도 계의 왕위(王位) 자리를 굳히게 되었는데, 그 6회 대회 때(1971년) 육군대표팀 감독 김 모 소령은 오래도록 해병대 선수들을 뒷바라지 해 왔던 고임훈 중령에게 "이번 한번만이라도 져 줄 수 없겠냐"며 애원을 했다가 무안을 당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6회 대회가 끝난 후 그 해 1월 말에 예편을 했던 고임훈 중령은 그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로부터 그들이 딴 6회 대회 우승상배를 선물로 증정받았는데, 보은의 뜻이 담긴 그 상배에는 '감독기념 고임훈 중령 혜존'이란 글자와 '해병대 태권도부 일동'이란 글자가 위 아래에 크고 작은 글씨로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5연승을 거둔 해병대팀의 주역들은 최동진 최영렬 유기대 최권열 김인수씨 등(3~4단)이었고, 보은에 얽힌 비화는 다음과 같다.


  즉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사령부 사병인사계장으로 근무했던 고임훈 대위는 부임 즉시 태권도부를 발족시키려고 했으나 태권도에 대한 관련부서장(행정참모부장 오명복 대령)의 이해 부족으로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어 부득히 인사기록카드와 아는 사랑들을 통해 예하 각 부대에 흩어져 있는 선수들의 소속을 확인한 다음 그들에게 1개월 내지 2개월 간씩 장기휴가 혜택을 주어 도장에서 연습을 하도록 남모르게 뒷바라지 해 준 그러한 공을 그들이 잊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한편 1957년 진해 해병교육단에서는 태권도 교관요원을 양성하기위해 처음으로 태권도 교관교육대를 설치하여 15명의 교관요원을 길러 내었는데, 그것이 효시가 되어 주월 청룡부대가 철수한 후 1사단과 2사단에서는 전 장병 유단화(有段化)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그 교관교육대를 10여년 간 지속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엄 청난 숫자의 유단자를 배출시켰다.


  현재 국기원(國技院)에는 고단자 심사관으로 있는 황춘성씨(9단. 태권도 협회 부회장)를 비롯하여 박명수(9단. 기술심의회 지도위원), 김기동(9단. 국기원 강사겸 세계연맹 경기위원), 장기승(9단. 기술심의회 부회장), 문창남(9단. 기술심의회 지도위원), 배성실(9단. 기술심의회 흥보분과 위원장), 이규현(9단. 기술심의회 교육분과 위원장), 맹만호(9단. 기술심의회 국제본과 위원장), 박기인(8단. 국제운영부장), 김철호(7단. 세계연맹 사무차장), 김병선(국제과장), 최정도(7단. 국가대표 총감독)씨 등 해병대 출신의 최고단자들이 요직을 독차지 하다시피 하고 있고, 해외에 진출한 해병대 출신 태권도인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해외로 진출한 태권도인들 중 이무용씨(병 94기)는 1985년 전 미국 태권도연맹 회장을 역임했고, 1972년에 도미한 이상철씨(병 232기)는 현재 전 미국 태권도연맹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오세아니아주의 태권 맹주(盟主)로 알려져 있는 이종철씨(병 157기)는 자기 자신과 그의 제자들(호주인과 뉴질랜드인)이 운영하고 있는 1000여 개에 달하는 도장에서 연중 무휴로 실시하는 승단 심사에 참가하느라 가정을 돌볼 겨를이 없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1983년 국방부 체육담당관으로 있다가 브라질 연방경찰국의 태권도 사범으로 초빙되어 브라질로 이민을 간 이백수씨(해간 47기)는 연방경찰국의 태권도 사범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을 뿐 아니라 2회에 걸쳐 재(在)브라질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브라질 교포 청소년 축구팀을 인솔하여 북한에서 친선경기를 가짐으로써 한민족 100년 이민사(移民史)에 기념이 될 발자취를 남겼으며, 해병1사단 태권도 교관겸 시범단장, 청룡부대 초대 태권도반장, 국방부 군 태권도 수석지도위원을 거쳐 자유중국 육전대 태권도 교관(3년), 자유중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 및 코치(5년)를 역임했던 김기동씨(해간 33기)는 그의 시범을 직접 참관한 장개석 총통과 장경국 국방장관의 마음을 움직여 자유중국의 전통무술인 거권도(莒券道)를 태권도로 바꾸게 하는 신화(神話)를 창조한 태권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1973년 해병대가 해군으로 통합된 후에는 해군대표팀으로 출전하여 12, 15, 17, 18회 대회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태권도협회에서 주관했던 18회에 걸친 전국대회 중 해병대와 해군대표팀은 9회를 우승한데 반해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1공수단팀은 1회(7회), 육군대표팀은 4회(8, 11, 14, 16회)의 우승기록을 남겼다. (1회대회의 우승팀은 경희대. 9회는 경기도팀. 10회는 동아대팀. 13회대회의 우승팀은 한국체육대학팀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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