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해병 이등병의 휴가.

머린코341(mc341) 2017. 10. 22. 20:26

해병 이등병의 휴가. 


황창하.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매일 계속되는 지겨운 일상과 선임병들의 갈굼에 내가 왜 해병대를 왔나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딱 죽거나 탈영하고 싶은 그 순간 위로휴가가 찾아왔습니다.


3박4일의 위로휴가.


나를 억누르기만 하던 존재들이 가득한 부대를 출발한 군용버스는 같은 대대의 동기들 3명과 함께 ‘사람들이 산다’ 는 신촌에 내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이~ 야아~!”


밝은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하며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근처 화장실에서 작대기 하나가 선명한 휴가복을 벗어 넣고 병장계급장이 달린 얼룩무늬 위장복과 링 착용. 완전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변신 그 자체였습니다.


찌질해 보이던 동기들이 완전히 달라 보이더군요. 신촌에서 동기들과 간단하게 회포를 풀고 서울역으로 이동 했습니다.


기차표를 구입하고 역 앞에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나더군요.  “착착착!” “철렁! 철렁! 철렁!”


큰 키에 칼같이 줄잡은 단정한 군복, 번쩍이는 장식, 군화소리 맞춰 올리는 링 소리, 네~ 헌병이었습니다.


2열종대로 선 헌병 8명에 우측에 인솔자 하나, 총 9명. 휴가의 예기치 못한 복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위압감을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떨결에 우릴 보니, 상의 단추 풀고 모자를 뒷주머니에 꽂고 있었으므로 복장불량. 거기다가 마이가리 병장계급장.


휴가증을 제시하면 마이갈이 계급이 들통 나기 때문에 적발 당하면 이대로 자대복귀 조치될 수도 있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었습니다.


말없이 서로 눈빛으로 그 위기감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척척척!” “철렁! 철렁! 철렁!”


군화소리와 링 소리는 저희 쪽으로 점점 가까워 졌습니다.


나 - “야, 자들 우리한테 온다. 어쩌지?”

동기1 - “ .... ”

동기2 - “그냥 갈지도 모른다. 기다려보자”


혹시나 하는 기대로 헌병들을 힐끔힐끔 바라 보는 저희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가까워지고 무표정한 표정의 헌병들의 눈동자는 ‘너희들 딱 걸렸다!’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를 보고 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고 짧은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은 좌절로 발전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 - “야, 미치겠네!”

동기1 - “이게 얼마만에 나온 휴간데”

동기2 - “으휴 --- ”


병장계급장과 복장상태를 아무리 자책해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극단으로 몰린 이때 모두들 선임병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헌병한테 검문 당해 휴가증 뺐기면 바로 복귀해서 군기교육이다.”


이 꿈같은 휴가를 시작도 못해보고 접고 부대복귀해서 중대장님과 선임병들에게 당할 일을 생각하니 그 공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심전심. 무지무지한 공포가 의외의 용기로 변질되었습니다.


휴가증. 당시 저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종이조각이었습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대로 위로휴가를 마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슴에 부착한 대대마크를 가만히 떼서 주머니에 넣고, 전투준비.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구경 이라고, 역 광장을 지나던 많은 육, 해, 공군의 군인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감지하고 삼삼오오 모여 들어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헌병과 해병대 한 무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이니, 그들의 기대대로 헌병들은 우리와 얼굴이 확인 가능한 거리까지 가까워지고  코너에 몰려 좌절하던 이등병들은 결전의 의지가 가득 찬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헌병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 호전적인 자세까지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헌병들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묻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표정에선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해 졌습니다.


눈이 마주친 인솔자가 눈빛을 피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 간. “좌향 앞으로 가!” 하는 인솔자의 구령에 맞춰 헌병들의 대열은 저희와 약 4~5m의 거리를 두고 “척!” 소리를 내며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저


흰 안도와 또 다른 묘한 감정이 교차하고 관객들은 허탈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헌병들 눈에 저희가 이등병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희가 배운 게 마대질과 걸레질 그리고 휴지통 청소라고 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훈련소에서 나름 검게 탄 피부, 상륙돌격형 헤어스타일, 얼룩무늬 위장복의 해병 네 명, 가슴에는 검정바탕에 선명한 노란 작대기 네 개와 각종 훈련마크. 게다가 눈빛 가득한 결전의 의지.


당시에는 위장복은 해병대와 몇몇 특수부대만 입던 시절이었습니다. 헌병들이 결코 숫자적 우위를 자신 할 상황은 아니었고 검문 강행시 활극을 각오해야 했던 겁니다.


하여간 그날이후 헌병도 거리낄게 없음을 확인한 이등병의 휴가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3박 4일의 휴가는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가고, 가족과의 마지막 아침식사,


어머니 -“창하야 이제 들어가면 언제 또 나오니? 잘 참고 견뎌라!”


하는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과 아버지의 격려사를 듣고 있자니 답답해지더군요.


 “걱정 마세요”


힘없이 한마디하고 현관에 앉아 군화 끈을 땡겨 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아버님께 (참고로 저희 아버님이 대대장 출신 이십니다.)


“아버지~이 저 다른 데로 좀 보내주세요.”

“저 거기만 아니면 됩니다. 제발 다른 데로 보내 주세요. 네? 흑흑흑!”

“저 거기 계속 있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엉엉엉! 엉엉엉!”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어제까지의 어깨에 힘들어간 당당한 해병의 모습은 간데없고 어머니와의 이별 앞에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더군요. 당황해 하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제 세상 만난 것 같은 마이가리 해병병장은 딱 3박4일 만에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왔고 어리바리한 시절을 지나, 체질소리를 들으며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했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휴지통을 들고 달리시는 전국의 이등병 여러분 그 빛이 안 보이는 이등병 생활에도 휴가라는 달콤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꿋꿋이 잘 참아 내시기 바랍니다.


“필~씅!” 


해병 673기 예비역 해병병장 황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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