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최악의 휴가와 크리스마스..

머린코341(mc341) 2017. 10. 25. 17:22

최악의 휴가와 크리스마스..


김재민.  충북 청원군 오창읍.


안녕하세요. 


사실 전 크리스마스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그런 사람입니다. 사실 저희 집은 독실한 불교 집안이라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크리스마스가 군대에서 까지 저를 힘들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백령도는 배가 오전 6시40분, 그리고 오후 12시 40분, 이렇게 두 차례 운행을 하는데 태풍 주의보나 바다안개인 해무가 끼거나 또 파도가 높거나 기타 등등 이유로 배가 안뜰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의 어머니는 저 면회 오셨다가 태풍주의보로 인하여 무려 6일이나 백령도에 갇히셨어야만 했습니다.


그해 12월 22일 저는 상병 휴가를 준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부대와 마찬가지로 한 일주일 전부터 육지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휴가복은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정도로 칼날을 잡으며 휴가 날짜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을까요.


드뎌 12월 21일 휴가가기 전날 대대장님께 휴가 신고를 마치고 모든 휴가자들은 다음날 날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상 캐스터 - “내일 날씨는 전국이 아주 맑겠습니다. 바다의 파도도 잔잔할 것이며......,”


저희 휴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기뻐했죠.


나 - “박 해병님! 내일 저녁에 신촌 가서 쐬주 한잔하고 나이트 함 가야겠죠.”

박병장 - “좋지! 모두 돈 걷어서 내일은 죽을 때까지 한잔 마시는 거야.

             그리고 담날 모두 집으로 렛츠 고!”


저희 휴가자들은 내일이면 몇 개월 만에 육지를 밟는다는 기쁨으로 모두들 좋아했죠. 그리고 휴가자 전통으로 상병 말 호봉인데요. 저녁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근무를 섰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마냥 좋았습니다. 겨울이라 춥기는 했지만 밤하늘에는 별빛이 반짝거렸고 기온은 낮았어도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거든요.


(여기서 잠깐, 백령도의 모든 장병들은 휴가나 전역때만 되면 날씨에 민감합니다. 배가 못 떠서 전역을 못한 사람도 있었구요. 휴가를 1주일 정도 늦게 떠난 장병도 많으니까요. 심지어 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상을 다 치룰 때까지 집에 못 갔던 장병도 있습니다.)


어쨌든 배가 뜨고 안 뜨고는 새벽 5시 정도면 밝혀지니까 근무를 마치고 전 들뜬 마음으로 군복을 다시한번 다리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군복을 거의 다릴때쯤 휴가를 같이 가는 후임병이 급하게 오더니


후임병 - “김해병님, 오전에 배 안 뜬다던데요.”

나 - “얌마! 뭔소리여?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일기 예보도 좋다고 했고..”

후임병 - “바다에 해무가 너무 많이 껴서 배가 움직일 수가 없답니다.

나 - “허걱!!?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북괴군이며 휴가의 주적은 해무였다 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해무 즉 바다안개. 도로에도 안개가 많이 끼면 시야확보가 낮아져서 사고도 많이 나고 운전하기 힘들죠? 배는 해무가 많이 끼면 운행을 안 한답니다.


나 - “그래! 오전 휴가는 반납하자. 대신 해무니까 오전에 걷히면 오후에는 배가 뜨겠지.”

후임병 - “그럼 오후에 나가면 서울에 있는 제 여친에 친구들 대기 시켜 놓겠습니다.”

나 - “자식! 너 정말 군 생활 잘한다.”


저희는 비록 오전 휴가는 반납했지만 그래도 들뜬 마음에 오후 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해병님이,


박해병 - “야! 김해병 상황실 가서 배 뜨는지 안 뜨는지 알아봐!

             왜? 아직까지 휴가자 준비하라고 말을 안 해주는 거야?”

나 - “옙! 알겠습니다!”


저는 상황실로 쏜살같이 달려갔죠.


저 - “야! 상황병, 배 뜨는 거야 안 뜨는 거야? 왜 말이 없어?”

상황병 - “그게 말입니다. 아직까지 해무가 걷히지 않아서 오늘은 운행 취소라고 합니다.”

“띠용!!!!!!”


이게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라 말입니까.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태풍이 불어오는 것도 아니고 바다 중간에 껴있는 안개로 인하여 배가 안 뜨다니.


정말 힘이 쫙 빠졌습니다. 휴가자들 모두 마찬가지였죠. 저는 어제 4시간 동안 야간 근무 선 것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배가 안 떠서 그런걸. ‘그래 날씨는 괜찮으니까 내일은 뜨겠지..’ 라는 생각을 갖고 기운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일기예보를 보니, 그 기운마저 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상캐스터 - “내일 오전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서해바다와 동해바다에 파도가 높습니다.”


저와 휴가자들은 초긴장 상태로 돌입을 했고, 다음날 새벽 아니나 다를까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당연히 파도가 높아 배는 뜨지 않았습니다. 망연자실 할 수밖에요. 그 더러운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웬지 지금 생각해도 짜증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전 저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집에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나 - “지금 전투 상황이 걸려서 오늘까지는 휴가를 나갈 수가 없어.”


라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피하게 날씨 때문에 배가 못 떠서 휴가를 갈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더 웃긴 건 바람이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져서 오후배도 뜨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서 부대에는 악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휴가가 다음 주로 연기된데..”


바깥에 계신 분들은 며칠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그게 뭐 대수롭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휴가를 기다리는 군인만이 아는 겁니다.


휴가날짜까지는 하루가 1년이죠. 저희 휴가자들은 “에이, 설마. 그런 일은 없을꺼야.”


하지만 그런 일은 있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인 25일까지 날씨가 좋지 않다.” 라는 예상이 나오자 “24일 휴가를 다음주 30일로 연기한다!” 라는 명령이 떨어진 겁니다. 하늘도 무심하셨습니다. 짜증만 나고 일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저희 부대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백령교회 목사님께서 방문을 하셨습니다. 내무실 마다 뽀빠이 한 박스씩을 건네며


목사님 - “지금 바로 장기자랑을 잘하는 내무실은 뽀빠이 한 박스 더!”


를 외치셨습니다. 저희 내무실은 다른 내무실 보다 앞서 제가 기타를 치며 ‘김광석에 일어나’를 해병대 박수에 맞춰 불렀습니다.


당연히 저희 내무실에 뽀빠이 한 박스를 더 주시며,


목사님 - “내일 너희 내무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오늘 한거 다시한번 해줄 수 있겠나?”

내무실 선임 - “갈 수는 있는데, 몇몇의 불교신자들이 있어서......,”

목사님 - “종교는 평등한거야. 교회를 다니라는게 아니라 공연만 해달라는거지. 김 해병은 기타도 잘 치던데.”

나 - “목사님, 제가 그 불교신자 중 한명인데요. 그리고 전 흑룡사(절) 스님과도 친해요.”

목사님 - “괜찮아,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스님도 허락해 주실꺼야.”

나 - “그래도.. 전......,”

목사님 - “자꾸 빼면 중대장한테 말해서 억지로 라도 보내라고 한다.”

나 - “알겠습니다. 나가겠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저희 내무실 장병들과 함께 교회로 갔죠.


정말 중학교 이후 교회는 처음이었습니다. 어색하기도 하고 스님에게 죄송한 맘도 들고, ‘그래 오늘 하루만큼은 부처님도 스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그런데 그때 목사님께서는,


목사님 - “지금 이곳에서 기타를 치는 장병은 독실한 불교 신자입니다.

          오늘 절에 가야 하는데 제가 꼬셔서 어쩔 수 없이 오늘 저희 교회로 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장병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 - “이게 뭐야?” (속으로) ‘아 정말 챙피하다.’


저는 그날 저를 위해 기도하는 기독교 장병들을 위해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내무실 장병들은 노래를, 몇몇 장병들은 댄스와 박수를 치며 공연을 간단하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다 마쳐 갈 때 쯤, 저희 중대 전령으로부터 호출이 온 겁니다.


전령 - “오늘 오전 11시에 배가 뜨니까, 휴가자 빨리 복귀해서 휴가 준비하라는 중대장님의 명령입니다!”

나 - “뭔 소리여? 휴가 담주로 연기 되었는데.”

전령 - “그랬는데, 배가 갑작스래 떴다구요 . 빨랑 복귀하시랍니다!”


저희는 뭐라도 생각 할 시간도 없이 부대로 복귀해서 휴가 준비를 하였습니다. 며칠간 자란 삐쭉삐쭉 튀어나온 머리, 다 구겨진 휴가복, 정말 정신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중대장에게 간단한 신고만 하고 배타는 곳으로 갔습니다.


정말 저희 중대 중대원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워커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정말 애써 달인 군복은 다 구겨져 있고 머리는 삼발을 하고.......


어쨌든 힘들게 출발한 휴가였지만 저희 부대 휴가자들은 모두들 아무 탈 없이 휴가 복구를 했고 며칠 후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수고 했다고 뽀빠이 3박스를 선물로 저희 내무실에 전달 하셨습니다. 그리곤 목사님께서 그날의 휴가는 하나님께서 주신 크리스마슨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저희 중대원들이 모임을 하는데요. 가끔씩 그때 휴가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웃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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