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숭어와의 전쟁.

머린코341(mc341) 2017. 10. 25. 17:24

숭어와의 전쟁.


최유식. (익명)  경북 칠곡군 석적면 중리.


저는 해병 559기 최팔용입니다.


1985년, 두 번 이나 해병대 시험에 떨어졌음에도 죽어도 해병대에 가야겠다는 친구 따라 얼떨결에 해병대 지원, 입대한 놈입니다.


참고로 그 친구는 나보다 신체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끝내 해병대에 못 가고 일반 군인으로 들어갔더군요. 머리가 좀 나쁜 놈이었거든요.


무슨 소린가 하시겠지만 그때는 시험도 쳤거든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1985년 11월, 포항 훈련소로 애인이 준 “아무리 힘들어도 탈영하지 마!” 라는 쪽지를 들고 입소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오기 전 조교로 있다가 몸이 좋지 않아 제대한 동네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님이 김 아무개라는 조교를 찾아가라고 하더라구요.


찾아갔더니 중사였는데 1중대 1소대 소대장이더군요. 조교들을 무조건 소대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누구누구가 찾아가라고 했다 했더니, “아! 너야? 안 그래도 전화 받았다.


기다려 봐.” 하시더니 다음날 어떤 녀석과 저를 바꿔 가더라구요.


그래서 1중대 3소대에서 1소대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랍니까? 훈련소 실무배치 받는 내내 그렇게 후회해 본 적 없고, 고향 그 형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알고 보니 3소대장님은 훈련소 소대장님들 중에서 순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내가 찾아갔던 1소대장님은 ‘독사’ 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훈련과 얼차려를 받으면 나 혼자 열외 시켜줄 수도 없고, 그냥 훈련 끝나고 순검시간에 잠시 와서 “힘들지?” 이 한마디가 전부인 것을 내가 왜 찾아 간 건지 후회막심이었습니다.


훈련 중 잠시 휴식을 취할라 치면 무슨 이유인지 우리 소대는 계속 얼차려의 연속이었고, 3소대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뛰겠더라구요. 하여간 이렇게 꼬이기 시작한 훈련소를 마치고 실무를 김포로 왔고, 시간은 흘러 전역 한 달을 남겨 놓은 말년 병장이 되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고, 햇볕도 조심하여 다니라는 말년 병장인데, 이런 때에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철책선 안쪽에 있는 ‘숭어잡이’ 였습니다.


김포 시암리 철책선 경계근무를 서 본 해병들은 아실 겁니다. 4~5월에 철책선 밖 물꼬에 모여드는 산란기 숭어떼를 보셨을 겁니다. 그냥 말 그대로 물 반 고기반입니다. 오죽하면 철책선 너머로 큰 돌멩이를 휙 던지면 그 돌멩이에 숭어가 맞아 둥둥 뜰 정도니까요.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놈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철책선 군데군데 비무장 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문이라는 문이 있었습니다.


비상시나 철책선 안쪽에 있는 크레믈린 같은 것을 설치하기 위한 문이죠. 그 문 열쇠를 소대장이 갖고 있는데 어떻게 가져오나 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우리 소대에 얼마 전에 새로 오신 어리바리 신임 소대장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나 궁리하다가 주계(주방)에 가서 주방장에게 오늘 배식 받은 닭 한 마리를 빼내어 멋진 술안주를 만들라고 지시를 하고 담 넘어 슈퍼에 가서 소주도 준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소대장님, 오신지 얼마 안 되어 얼떨떨하시지요? 저는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쐬주라도 한 잔 하시지요.” 이렇게 소대장님을 꼬셔내어 주방에서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그 사이 졸병을 시켜 소대장님 방을 수색하게 했습니다.


열쇠를 찾으면 재빨리 통문으로 뛰어 와서 열쇠를 열어 놓고 슬쩍 잠긴 모양으로 해 놓은 뒤 열쇠는 제자리에 원상복귀 시켜 놓는 겁니다. 잠시 후 졸병이 OK 싸인을 보내더군요. 술자리가 끝나고 통문 양옆 초소에 연락을 취해 놓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날 방위병을 앞세워 투망을 던지기로 했었죠. 둘은 통문을 열고 조용히 물꼬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물꼬 쪽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곳에 방위병이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위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최해병님, 최해병님 도와주십시오!”

 “왜? 왜 그래?”


그리고 그 방위병 쪽으로 가보니, 아니 그 녀석 그물을 두 손으로 잡고 질질 끌려 가는게 아닙니까. 철책 안쪽에는 100% 뻘이었고 우리는 맨발을 하고 있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숭어가 잡힌 겁니다.


숭어가 그렇게 힘이 좋은 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제가 끌려가는 방위병 허리를 끌어안고 잡아 당겼습니다. 그리고 뻘 밖으로 끌어내는데 정말 엄청 나더군요. 둘이서 낑낑거리며 통문 밖으로 옮겨 놓고 다시 들어가서 뻘밭을 원상복귀 시켰습니다.


소대로 돌아와 주방으로 가서 몇 마리인지세어보니 총 16마리의 팔뚝만한 숭어가 한꺼번에 잡힌 겁니다.

 

다음 날 소대장님께는 소대 앞 도랑에서 낚시로 잡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세 마리 회를 떠서 소대 회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수원에 사는 형님에게 빨리 면회를 오라고 해, 영문도 모르는 형님과 형수님은 비닐포대에 10마리가 넘는 팔뚝보다 큰 숭어를 두 분이서 끙끙거리며 버스에 싣고 가셨습니다.


전역을 한지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일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지금도 4~5월 이면 그 숭어떼를 보며 군침을 흘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