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비리라고? 해외 무기도입서 대부분…억울한 방산업체
[갈길 먼 방산强國③]정치 비리 반복…무기개발과 무관
비리 프레임 때문에…방산업체는 감시·처벌이 일상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편집자주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도약과 퇴보의 갈림길에 놓였다. 무기개발 예산확대로 도약의 기회가 왔지만 과거의 규제 일변도 제도가 방위산업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수많은 동맹국에 무기를 수출하며 어마어마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진 방위산업 모델에 비하면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자주국방은 물론 수출형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내 방산 부문이 풀어야할 숙제를 짚어본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1993년 율곡 비리 사건, 1996년 린다 김 로비 사건.
'방산 비리'의 대표 사례로 여전히 회자되는 두 사건의 공통점은? 해외 무기를 한국에 도입하는 방위사업 과정에서 군 관계자와 무기 중개상 등이 얽히며 뇌물이 오가며 벌어진 일이다.
◇외산도입·군납 비리인데…애꿎은 방산업체만 뭇매
2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방산 비리는 방산업체 또는 협력업체가 직접 개입해 방산 물자의 납품 활동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비리를 뜻한다.
국내에서 무기 체계를 개발 및 생산하도록 국가에서 지정한 89개 방산업체는 해외 무기 도입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방위사업 과정에서 비리가 터질 때마다 국내 방산업체들도 함께 손가락질을 당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방위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방산 업체와 무기 중개상은 군 무기 획득 과정에서 경쟁자이기도 하다"며 "국내 방산업체는 정부가 지정해 관련 법규와 제도하에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비리가 싹틀 소지가 작지만 무기 중개상의 해외 무기 도입과 관련된 비리에도 국내 방산업체가 비난을 받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 새는 군화, 저질 건빵, 40년 된 침낭 등 군납물자 납품 과정에서 벌어지는 뇌물, 담합, 불량 제품 공급 등도 방산 비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무기체계 등 방산 물자와 군납 업체들에 의해서 공급되는 군 일상용품은 완전히 다르다.
군납 비리, 국방 비리 등에 방산기업이 얽힌 것으로 곡해되며 애꿎은 업체들 사기만 저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방산비리'프레임에 실적용 수사…절반은 무죄
정부는 방위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방산 업체들에 칼을 대는 일을 반복적으로 벌여왔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출동하지 못한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를 계기로 2014년 11월 출범한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현 방위사업수사부)을 구성한다.
4개 팀, 117명으로 출범한 합동수사단은 검찰과 국방부, 경찰청, 국세청, 금융감독원에서 파견된 요원도 포함돼 사상 최대 규모였다.
정부가 방산 비리 척결을 외치자 수사 기관들은 실적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방위사업 비리 혐의를 받은 상당수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권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1~2017년 7년간 검찰이 주요 방산 비리 사건으로 구속기소 한 34명 중 17명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구속 후 무죄율은 50%다. 일반 형사사건과 권력형 비리 사건의 구속 후 무죄율은 10%가 채 안 된다.
최기일 건국대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정부가 외쳤던 방산 비리 프레임 속에 수사기관은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며 "국내 방산 분야엔 실제 전문가라 불릴 만한 사람이 많지도 않은 실정인데 이를 갖추지 못한 수사기관은 무리한 수사를 이어갔고 결국 밝혀진 방위사업 비리는 대부분 개인의 것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방사청 밀착감시로 '옥죄기'…늘어나는 소송 건수
산업육성이 아닌 감시와 규제에 초점을 맞춘 환경은 왜곡된 방산비리 프레임에서 비롯된다.
무기획득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의 1600여 명의 인원 중 110명은 내부감시자로 구성돼 있다. 감사원의 국방감사단(3개 과)과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상당수의 인력은 방사청을 밀착 감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사청 공무원들 역시 사업 추진에 있어 방산 업체들에 대한 감시와 규제, 처벌을 강화하게 된다. 방사청은 기업에 지체상금(납기일 지연 시 벌금)을 부과하거나 부정당업자 제재(신규 사업 참여 제한)라는 징벌적 조치를 내린다.
업계 관계자는 "방사청 담당자가 사업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업체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나중에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워 일단 업체에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현 제도하에선 정부와 업체가 서로 신뢰를 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방사청으로부터 철퇴를 맞은 방산 업체들은 막대한 지체상금과 사업 기회 박탈을 피하고자 소송에 나선다.
방산 비리 수사가 본격화될 무렵인 2014년에는 새로 접수된 소송이 37건이었으나 2015년에는 62건, 2016년 65건, 2017년 75건, 2018년 70건 등으로 증가추세를 보인다. 올해도 벌써 35건이다. 방산 기업들과 정부 간의 유례없는 소송분쟁이 로펌 시장을 먹여살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방산 업체들은 자율적으로 새로운 무기 개발이나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는커녕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이는 결국 한국 방위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안영수 한국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센터 센터장은 "방산 비리 문제는 계약적 관점에 의한 감시기능 강화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유인을 갖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장기적 산업 정책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 창의성과 역동성이 가장 높아야 할 국가 핵심 연구개발(R&D)을 법의 잣대로 해결하는 현재의 방식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방사청은 올 초 옴부즈맨 지체상금위원회를 만드는 등 방산업계를 오랜 기간 괴롭혀 온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업계의 기대감은 높아지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많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방위산업업체들의 애로사항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려는 의지는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송상현 기자 songss@news1.kr
[뉴스1]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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