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12.12사태

12.12 : 군벌과 군조직 -8-

머린코341(mc341) 2020. 3. 15. 12:01

12.12 : 군벌과 군조직 -8-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박희모 제30보병사단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육본 지휘부가 막 수경사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그는 참모장에게 참모차장 일행들을 안내하라고 지시한 직후 박희모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육사출신이 아닌 갑종 출신이었다.


“박 장군! 당신도 이런 상황 하에서는 나의 지시를 받게끔 되어 있소. 지금 반란군인 김포 방면의 1공수여단이 제1한강교로 도강을 시도했으나 수경사에 의한 차량바리케이트로 인하여 회군하였는데 혹시 30사단 관할인 행주대교를 이용하려고 할지 모르니 반드시 차단해주시오. 또 전두환 합수부장 측인 노태우 소장의 9사단이 병력을 출동시키면 30사단 지역을 통과할 터이니 구파발의 대전차 장애물에 연하여 전차와 106미리 무반동총, 로케트 등을 동원해서 9사단의 서울 진입을 막아줘야겠습니다. 반란군인 전두환 합수부장과 황영시 1군단장 지시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알겠습니다. 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 박희모 사단장은 3군사령관 이건영 중장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다.


“나 군사령관이야.”

“예.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지금 어디 있지?”“예. 방금 지금 ...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들어가요.”

“예.”

“다시 들어가는데, 가서 부대 장악 좀 잘 해가지고 내가 뭔 부대 출동하자 할 때까지, 명령 있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게.”

“알겠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게 좀 불명확한게 있는 것 같아.”

“아, 예. 예.”

“그러니깐 지금 함부로(병력을) 냈다간 서로 충돌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맡에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고, 사단장만 알고(있어.) 내가 부대 출동할 일이 있으면 위에서 명령보고로 직접 연락할테니까.”

“예, 예. 그럼 저 CP에 가 있겠습니다.”

“응, CP에 들어가 있어.”


그러나 박희모 소장은 구파발과 수색에 검문소 병력을 증강하지도, 행주대교로 올 수 있는 1공수여단 병력을 증강시키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보안사 보안처장 정도영 대령의 전화를 받고서는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후 00시에는 아예 부대가 훈련을 나갔다는 이유로 구파발과 수색 검문소의 병력을 강화하여 좌우 방벽에서 반란군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을 거부했다.


만일 박희모 사단장이 장태완 사령관의 요청처럼 구파발 방면의 병력을 증강하고 행주대교를 폐쇄 혹은 경계강화했다면 12.12가 조금 더 진압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장태완 사령관은 이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일행에게 그때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때 수경사 정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육본 보안부대장 변규수 장군이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장태완 소장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조금 전 보안사 요원들을 모두 감금시킨 것도 있고, 수경사까지 따라온 육본 보안부대장의 저의가 보여 그를 연금시키고자 했으나 상대가 장군이라는 점이 걸렸다. 그리하여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자, 윤성민 차장은 일언지하에 “연금시키시오!” 라고 말했다. 그는 그대로 지시를 내렸다.


수경사 정문에서는 변규수 장군이 지프차 안에서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다른 육본 참모 일행보다 늦은 이유도 합수부 측에 육본 지휘부의 수경사 이동을 알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헌병장교와 초병들이 달려들어 그와 운전병, 전속부관에게 총을 겨누고 하차를 지시했다. 그가 반항했다.


“이봐, 내 계급을 봐라. 내가 도망칠 신분이 아니잖나! 도대체 누가 구속영장도 없이 나를 이렇게 구금하라고 했는지 말해!”


그에 대한 헌병 장교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상부 지시에 따른 겁니다!”


변규수 준장은 무장해제를 당한 후 포승줄에 묶여 12월 13일 아침까지 수경사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어야 했다.


11시 경에는 육참총장 수석부관 황원탁 대령이 문홍구 합참본부장에게 “장갑차와 전차, 그리고 병력을 나에게 조치해 주시면 제가 직접 인솔하여 서빙고로 쳐들어가서 총장님을 구출해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육사 18기 대표화랑 출신이었다.


문홍구 장군은 그대로 장태완 사령관에게 가 이를 말했다. 장 사령관은 전차 2~3대 정도는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였으나 정작 알아보니 동원 가능한 전차는 1대뿐이었다. 그럼에도 황원탁 대령은 한 대라도 좋으니 출동하겠다고 답했다. 그가 총장 구출을 준비하고 있을 때 문홍구 장군이 전화를 받았다. 미8군사령부로 가 있던 노재현 국방장관의 전화였다.


“수경사에 모여있는 장군들이 지금 병력동원에 관해서 협의들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절대로 병력을 동원하지 말아요. 전두환이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원만하게 타협이 될 것 같소 박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련된 정승화 장군 한 사람에 관한 문제라고 하니까 장군들에게 흥분하지 말고 있으라 해요. 보안사령관은 무지한 인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 그리 알고들 있어요.”


이후 문홍구 장군은 황원탁 대령의 서빙고 공격준비를 중지시켰다. 다만 장태완 사령관 또한 회고록에서 그도 그렇게 서빙고 공격을 고집하지는 않았다고 쓰고 있다. 그 이유로 그는 당시 정 총장이 사망하였거나 서울 외곽으로 빼돌려져있을 것이고, 서빙고에 있다 하더라도 구출작전을 펼치는 순간 보안사에서 정 총장을 빼돌릴 것이 뻔해보였기 때문임을 들고 있다. 다만 그때 정승화 총장은 실제로 서빙고 분실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다.


이후에는 김진기 헌병감이 장태완 사령관에게 가 ‘헌병 1개 소대를 차출해준다면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가 대통령 각하를 모셔오겠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고명승 대령과 정동호 준장이 101경비단과 55경비대대 병력으로 총리공관을 둘러싸놓은 이후였다. 결국 김진기 장군은 별 소득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장태완 사령관은 참모장 김기택 준장에게 사령부의 전 장교를 수경사 기밀실에 모이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원래 사령부에는 4백 50여명의 장교가 근무중이었으나 대부분의 장교들이 하나회의 공작 등으로 이탈하고 남아 있는 장교들은 60여명 뿐이었다. 장태완 사령관은 그 곳에서 그의 결의를 전했다.


“내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여러 동지들이야말로 배신할 줄 모르는 참된 군인이오. 여러분이 우리 사령부를 대표하는 그야말로 충정심에 불타는 간부들이라는 것이 이제 바로 그 모습으로 서로에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 사령관의 지휘능력과 덕이 부족한 소치이며, 또한 내가 취임한 지 불과 24일밖에 안되어 미처 이러한 암적 요소들을 사전에 제거치 못한 것이 전적으로 나의 책임임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다음과 같은 최후의 명령을 하달하니 우리 모두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해 줄 것을 바랍니다.


첫째, 제30경비단장, 제33경비단장, 그리고 헌병단장 등을 발견 즉시 체포 또는 사살하라.


둘째, 현재 제30경비단에서 반란을 모의하는 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니 발견 즉시 체포 또는 사살하라.


셋째, 여기 없는 동료 장교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여 설득시켜 본대로 귀대시켜라. 그러면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지만 끝까지 역모에 가담하겠다면 그도 가차없이 사살하라.


넷째, 각 외곽 검문소는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하며 수상한 자는 별도 조사 후 조치하라.


다섯째, 방송국 및 각 검문소 병력을 증강하라.


여섯째, 현재 반란군에 가담하고 있는 청와대 뒷산 팔각정 주변에 배치된 병력을 33경비단 부단장이 가서 설득하여 은밀히 사령부로 철수시키도록 하라.


일곱째, 사령부에 남아 있는 전차 4대, 3.5인치 로켓포 등 가용한 모든 화포는 탄약상자를 개방하여 완전히 차량에 탑재하고 자체방어에 임한다. 그리고 야포단의 모든 포는 경복궁을 조준하라.“


이후 윤성민 차장에게 통보를 한 장태완 사령관은 이번엔 참모장 김기택 준장에게 명령했다.


“조금 전 기밀실에서 지시한대로 전차를 비롯해서 행정병들을 포함한 전 병력들을 즉시 전투조로 편성하라. 목표는 경복궁의 30경비단과 보안사령부이다. 공격개시선은 퇴계로의 아스토리아 호텔 앞이다. 즉시 공격개시선 상으로 모든 부대를 전개하라. 출발은 내가 선도하며 중앙청 부근에다 적절한 진지를 점령한 다음, 전차포, TOW, 106미리 무반동총, 3.5인치 로켓포로써 양개 목표에 동시 집중사격으로 수백 발의 포탄을 집중시킨 후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여 역모자들을 사살 혹은 포획하고 반란을 진압한다. 즉시 본 명령을 시달하고 출동을 대기하라.”


[뻘글 집합소] 2015.11.25


'★한국 현대사 > 12.12사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12 : 군벌과 군조직 -10-  (0) 2020.03.15
12.12 : 군벌과 군조직 -9-  (0) 2020.03.15
12.12 : 군벌과 군조직 -7-  (0) 2020.03.15
12.12 : 군벌과 군조직 -6-  (0) 2020.03.15
12.12 : 군벌과 군조직 -5-  (0) 202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