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병대 창설기-썰렁한 격납고 속에서 거행된 창설식

머린코341(mc341) 2010. 9. 16. 13:16

해병대 창설기-썰렁한 격납고 속에서 거행된 창설식

 

그렇게 하여 모집이 된 300명의 1기 신병 요원들은 그로부터 약 10일 간 해군 14기 신병 요원들이 수용되어 있는 그 위생학교 강당에서 그들과 함께 기거한 강복구 1조를 비롯한 몇 몇 기간요원들로 부터 내무생활을 지도 받고 있다가 3월 28일 덕산비행장으로 이동했는데, 그 어간에 통제부 내에 위치하고 있던 임시 해병대사령부에서는 안창관 소위로 하여금 약 30명의 인원으로 보수반을 편성하여 덕산비행장으로 보내어 사무실과 내무실 및 강당으로 이용할 건물을 보수하게 했다.

 

일제 때 일본  해군이 건설한 덕산비행장(부지 약 20만평)에는 대형 격납고 2동과 사무실과 경비병들의 숙소로 지어놓은 장옥 외에 해방 후 군정청 시절에 미군들이 건립한 5~6동의 퀀셑 건물이 있었으나 상당기간 동안 빈 상태로 있어서 그런지 손을 보지 않고서는 비바람이 새어 이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수상기의 승강로가 갖추어져 있는 덕산비행장의 활주로의 길이는 약 1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한편 3월 말까지 덕산비행장으로 이동하여 신병교육대를 편성완료했던 사령부에서는 4월 1일 1기 신병들의 입대식을 거행하고 4월 5일(식목일)에 창설기념식을 거행할 계획이었으나 국방부 사정으로 4월 15일에 창설기념식을 거행했다.

 

창설기념식이 거행되던 그 날 덕산비행장 입구에는 국방부장관 이범석 장군이 '海兵隊司令部'라고 쓴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썰렁한 격납고 속에서 거행된 식장에는 국방부 제2국장 신태영 소장과 손원일 참모총장, 통제부사령관 등 소수의 군부요인과 진해읍장 등 몇 분의 지방 유지들이 참석하여 축하의 뜻을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뜻깊은 그 창설기념식에서 초대사령관 신현준중령은 장병들에게 한 훈시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 어떤 시련도 혼연히 극복하고 장차 국방의 최강부대가 되도록 전장병이 일치 단결하여 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신현준 사령관은 6월 1일부로 대령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헌에는 창설 당시의 인원을 380명(1기 신병 300명, 기간장병 80명)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수치는 잘못된 것으로 규명되고 있다. 신현준 장군의 회고록(老海兵의 회고록)에 보면 3월말까지 확보된 기간장병의 수가 80명이라고 했고, 또 창설동지회(創設同志會)에서 작성한 편성표가 입증하듯 그 후(4.1~4.14)에 전입된 기간장병의 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며, 누군가가 3월말까지 확보된 그 80명을 근거로 잘못 발표한 것이 오류의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 초대참모장 김성은 장군은 바로 자신이 그러한 오류를 범한 장본인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