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창설기-고물군장
그 당시 공급이 된 훈련용 병기는 탄환이 한 발씩 장진해서 발사하는 수량이 넉넉지 못한 99식 소총과 목총 뿐이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2차세계대전) 때까지 사용했던 그 99식 단발소총은 총신 내부의 공선이 닳아 훈련기간 중 1인당 5발씩의 실탄사격 훈련을 실시했을 때 명중률이 극히 저조했다. 그나마 일부 소총은 공이가 빠져나가 격발이 되지 않았다.
신병교육대에는 2중대 선임장교 안창관 소위가 여수 반란군 소탕 지원작전 때 주워 왔다는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로 엇갈리는 출처불명의 M1소총 한 자루가 있어 교관들이 "우리 해병대도 언젠가는 이 신무기를 가질 날이 올 것" 이라고 말하면서 8발의 실탄을 끼우는 크립도 없고 실탄도 없는 그 소총을 마치 신주 모시듯이 각 중대별, 소대별로 돌려 가며 분해 결합과 조작법을 터득시켰고, 해병대가 제주도로 이동(1949.12)한 뒤에는 그 M1소총을 얼마나 쏘고 싶어 했던지 그 원을 풀기 위해 연못의 물을 퍼서 육군이 버리고 간 녹슨 크립을 주워 슬어 있는 녹을 닦은 다음 경기관총 실탄을 크립에 끼워 난생 처음 실탄 사격을 해 본 궁상맞기 이를 데 없는 비화를 남겼다.
1기생들이 착용했던 훈련복은 질이 나쁜 국산 광목을 국방색으로 염색해서 만든 후줄근한 훈련복을 공급받은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어디서 그런 구제품 같은 중고품을 얻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 해군 수병들이 입었던 쌀자루 같이 큰 백색 중고 바지와 상의를 입었다.
그리고 철모와 모자는 일본 해군 수병들이 버리고 간 화이바가 없는 철모도 있었고, 미 해군의 철모도 있었는데, 미군들 철모를 배당받은 사람들은 싸이즈가 너무 커서 미 해군 수병들이나 일본 해군 수병들이 썼던 흰 모자를 화이바 대신 그 속에 받쳐서 썼다.
그리고 훈련병들이 신은 신발(군화)의 경우는 주로 미국 해군 수병들이 신었던 중고 신발이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같은 미군들 것인데도 배같은 싸이즈가 너무 큰 것도 있고 너무 작은 것도 있어 그런 신발을 배당받은 사람들은 신을 수가 없어서 맨발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발목위에는 일본 군인들의 '마키갸한(각반)'을 쳤으니 참으로 가관스런 꼬락서니들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구나 훈련복은 단벌이었으므로 심한 훈련으로 천이 해질 경우 땜질을 하느라 훈련병들이 애를 먹었다. 옷 안쪽의 실 박음선 바깥에 붙어 있는 천을 잘라서 밥풀로 때우기도 했고, 야외훈련장에 나갔을 때 몰래 민가에 들러 천조각을 얻어 밥풀로 때우거나 바느질로 기워서 때우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3개월 간의 훈련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땜질로 만신창이가 된 볼썽사나운 넝마 옷으로 변했다.
1기생 훈련병들에게 공급이 된 병기와 군복 등 창설기의 군장이 그러했다는 것은 곧 해군의 기지 경비 명목으로 창설을 보게 된 해병대의 지체(신분의 한계) 그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며, 그 당시의 기간병들 중에 "우리는 해군의 의붓자식이란 말인가?" 하는 말을 하며 불평을 터뜨린 사람이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심기를 토로한 말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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