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창설기-강군비화
병1기생들의 훈련은 입대식이 끝난 직후에 치른 기마전이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이었다. 팬티 하나만 입고 실시한 그 기마전은 훈련병들에게 기어코 이겨야만 한다는 필승의 투지와 신념을 가다듬게 한 스파르타식 강훈의 시작이었다.
중대 대항전으로 실시된 그 기마전은 양 팀의 기수들이 상대편 기수가 쓴 모자(백색 해군모)를 벗기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모자를 쓰지 않고 상대편 기수가 말에서 떨어질 때까지 기수와 기마들이 합심해서 공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만약에 어는 한 중대가 패하게 되면 그 중대에서는 각 소대별로 또는 분대별로 훈련병들에게 무서운 고통이 수반되는 단체기합을 가했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계속하게 한 구보도 그 단체기합 중의 하나였고, 1개 분대의 훈련병들이(교대로) 그들이 어깨에 맨 목제 구령대 위에 몇 사람의 훈련병들을 번갈아 올려 태우고 연병장을 돌게 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기합은 훈련병들에게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합을 받아 본 훈련병들은 두 번 다시 받지 않기 위해 사생결단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훈의 골간을 이룬 것은 철주철미한 제식교련과 각개 전투 및 총검술 등이었고, 가장 이색적인 훈련은 삼복더위 속에 실시한 '북해도 곰잡이훈련'이었다. 이러한 훈련 종목 가운데 특히 각개전투때 실시한 포복훈련은 다른 어떤 훈련보다도 쓰라린 고통을 안겨준 훈련으로 기억되고 있다. 훈련장이 거치른 시멘트로 포장된 비행장 활주로였고 보니 팔꿈치와 무르팍이 성할 리 만무했고, 상처가 난 곳에서 스며 난 선혈이 훈련병들의 단벌 훈련복을 얼룩지게 했다.
명칭 그 자체가 시사하듯 북해도 곰잡이 사냥꾼들처럼 얼어죽지 않게 옷을 많이 껴입고 실시한 '북해도 곰잡이훈련'은 훈련병들에게 혹서 등 그 어떤 극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인내력과 투지를 기르는데 그 목적이 있었는데, 그런 훈련을 숨이 턱턱 막히는 오뉴월 복더위에 '앞의 총'자세로 비행장에서 약 1키로 떨어진 지점까지 구보로 왕복을 하다 보니 마치 온 몸이 한증막 속에 갇혀 있는 듯한 절박감을 느끼게 했고, 신발 속에서 다리를 타고 내린 땀이 흥건했다.
그런데 일본군에서 '혹카이도 구마가리(곰잡이)' 훈련이라고 했던 이 훈련을 훈련과목에 삽입한 사람들은 신병교육대의 핵심을 이루고 있던 일본 해군 출신 소대장과 분대장들이었다.
그 당시 사용했던 교재는 일본 육군의 보병조전과 일본 해군의 해군필휴 등을 적당히 번역한 것이었고, 그것을 등사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번역해서 만든 그 교재는 일본 군사서적을 번역한 사람들의 능력 부족으로 고소를 자아내게 한 대목들이 많았고,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던지 포목절도를 금치 못하게 한 대목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관과 조교는 대부분의 일본 해군의 경력자들이었고, 해병대로 전입하기 전 해군 항해학교 고등반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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