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 입대배경
(3) 해방병단 제1중대장
나의 인솔하에 해방병단 본부가 있는 진해로 내려갔던 700명의 신병요원들은 3개 중대로 편성되어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때 아무런 계급도 없이 제1중대장으로 임명이 되었던 나는 그해 4월 1일부로 2중대장 오명복, 3중대장 이청갑 등과 함께 참위(소위)로 임관이 되었다. 해방병단 교육대의 초대 대장은 강기태 부위(중위)였었다.
참위의 계급으로 임관이 되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국토방위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2월 16일 해방병단의 1중대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중대장이라는 직무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고, 점차적으로 나 자신의 두 어깨에 국방의 멍에로 생각하고 조국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맹세했었다.
해방병단이 창설된 날짜는 1945년 11월 11일이었지만 간부들(장교)에게 계급이 처음으로 부여된 것은 그 이듬해 2월 1일이었고, 계급이 부여될 때 손원일 단장에겐 참령(參領-소령), 인천기지사령관 백진환씨의 계급은 정위(正尉-대위), 그밖의 간부들에게는 부위(副尉-중위) 또는 참위(參尉-소위)의 계급이 부여되었었다. 그리고 해방병단 교육대(신병교육대의 전신)의 1기 수료일을 기해 사병들의 계급은 일본군의 계급색채를 띤 병조장(상사) 상등병조(중사) 1등병조(하사) 2등병조(병장) 1등수병(상병) 2등수병(병) 견습수병 등으로 제정이 되었는데, 700명의 1기 수료생들에게 부여된 계급은 동일한 계급이 아니었고, 각자의 학력이나 연령 경력 또는 학업성적 등에 따라 병조장에서 견습수병에 이르기까지 차등있게 부여되어 실무부서에 배치되었다.
해방병단 교육대의 1기 신병들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나는 1중대의 제3소대장 허승룡으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받았다. 즉 교육대 내부에 빨갱이들이 득실거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1소대장 이항표가 1주일간 주번을 서고 나면 교육대의 분위기가 싹 달라진다고 했다. 나도 그러한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만군 특설부대의 준위 출신으로 알려져 있던 그 이항표 소대장은 어딘지 모르게 불온한 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나와는 대도관중학교의 동창생이고 고려자위단의 단원이었던 그 허승룡 소대장으로부터 그런 보고를 받게 된 나는 그러한 얘기가 몹시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언론과 사상의 자유·출판 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군정을 실시하고 있던 그 당시로서는 그런 자를 처벌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었으므로 다만 그 자의 동태를 은밀히 감시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제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려자위단의 일원인 2소대장 윤영준 소대장에게도 그런 귀뜸을 해 주고 대원들이 빨갱이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나름대로 반공정신교육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었고, 허승룡 소대장은 SP대장 황운서 중위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고 계속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해방병단 창설기에 있었던 그와 같은 일들은 비단 해방병단 뿐 아니라 조선경비대(육군)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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