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초대사령관 신현준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5) 인천기지 사령관으로 부임

머린코341(mc341) 2014. 7. 2. 17:27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5) 인천기지 사령관으로 부임

 

  1946년 11월 21일, 나는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한 지 5개월 만에 비로소 견습사관에서 중위로 정식 임관하였다. 이와 아울러 나는 조선해안경비대 인천기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아내 혜룡과 아들을 데리고 현지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전임자는 백진환(白鎭燥) 대위였는데, 그는 인천기지를 창설한 사람으로서 나보다는 연장자(年長者)였다.

  내가 부임할 당시 인천기지 사령부의 간부진은 다음과 같았다.

 

기지사령관 申鉉俊 중위

인사 참모 金龍虎 소위(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

정보 참모 高吉勳 소위(軍事英語學校 출신, 陸警에서 海警으로 轉補)

작전 참모 金東河 소위(만주군 출신, 新京軍官學校 1기생)

군수 참모 南 鐵 소위(軍事英語學校 출신, 陸警에서 轉補)

 

  당시 인천기지에 부여된 임무는 담당 해역(海域)의 안전 경비가 주임무였는데, 나는 사령관으로 재직중 함정(艦艇)에 승선하여 백령도(白翎島)에 여러 차례 출장하였던 일도 있었다.

 

  내가 처음 인천기지로 부임해 갔을 때, 월미도(月尾島) 안에 있는 한 별장(別莊)을 사령부로 사용하고 있었고, 사령관의 관사(官舍) 역시 같은 건물의 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한동안 아침에는 1층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고, 오후에 일이 끝나면 다시 3층에 있는 숙소로 퇴근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사령관 숙소를 따로 마련하여 가족이 이사하게 되었다.

 

  내가 인천기지에 부임한 지 2주일쯤 된 12월 5일, 지난날 중국 북평에서 동고동락했던 이주일과 박정희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오랫만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지나간 그 시절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당시 두 사람은 아직 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에 입대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무렵 경기도 김포(金浦) 지역에는 해안경비대 총사령부에서 별도로 파견되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별동대(別動隊)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인천기지와 상호 긴밀하게 협력 연락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 책임자는 연정(延禎) 중위였다. 연정 중위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한편, 활동력도 대단히 활발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1947년 3월 1일부로 대위로 승진하였고, 같은해 9월 1일부로 다시 소령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부산기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후임자인 정긍모(鄭兢模) 소령에게 임무를 인계한 다음, 해안경비대의 함정 편으로 부산으로 전임해 갔다.

 

 

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