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6) 미군에 의해 연금당함
나는 1947년 9월 1일, 조선해안경비대 부산기지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전임자인 김장훈(金長勳) 소령으로부터 업무 인계를 받았다. 당시 부산기지의 간부진은 다음과 같았다.
사 령 관 申鉉俊 소령
인사 참모 金敎植 중위
군수 참모 李民錫 중위
작전 참모 李相烈 중위
참모 의무 桂炳輅 중위
수송 참모 韓承玉 준위
부산기지에서의 나의 임무는 관할 해역이 달랐을 뿐, 전임지인 인천기지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내가 부산기지에 부임한 지 2주일도 채 안된 9월 12일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부산 제4부두에 있는 기지 사령부에 출근하여 근무중이었는데, 미 군정청(美軍政廳) 소속 미군 수사관 2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증명서를 제시하더니, 나에게서 좀 조사해 볼일이 있다면서 부산 역 근처에 있는 수사기관으로 나를 연행해갔다.
뒷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연행되기 전에 이미 우리 가족이 거주하고 있던 부산 범일동(凡一洞) 소재 사령관 자택이 가택수색을 당하였다고 한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출근한 뒤 수사관들이 찾아와서 요즈음 사령관이 보고 있는 책을 전부 내놓으라고 요구하더니, 그 책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더라는 것이다.
미군 수사관들은 나를 수사부로 연행하여 별다른 신문(課問)을 하지도 않고 곧바로 감방에 가두면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만 하였다.
나는 1945년 12월 북평에서 광복군 주 평진 대대를 지휘하고 있을 당시에도 연안파 공산주의자 일당의 책동으로 중국군에 의해 부대 내 영창에 감금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나라의 장교 신분인 내가, 미군에 의해서 영문도 모르는 채 감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이때 부산기지 사령부에서는 내가 이유도 없이 미군 수사관들에게 연행되자, 즉시 서울에 있는 해안경비대 손원일 총사령관에게 상황을 긴급 보고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날 오후 5시경, 나는 "이제는 다 알아보았으니 나가도 좋다."고 하여 별일없이 풀려 나왔다. 사령부로 돌아오면서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고, 다만 혹시 미군측이 내가 공산당과 관련되지나 않았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수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해병대 사령관 글 > 초대사령관 신현준' 카테고리의 다른 글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8) 해병대의 창설 (0) | 2014.07.02 |
---|---|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7) 진해특설기지로 전임 (0) | 2014.07.02 |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5) 인천기지 사령관으로 부임 (0) | 2014.07.02 |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4) 임시 중위로 임명 (0) | 2014.07.02 |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3) 가족 상봉의 기쁨 (0) | 201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