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7) 진해특설기지로 전임
1948년 5월 1일, 나는 중령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조선해안경비대 진해특설기지의 참모장(參謀長)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해안경비대 총사령부가 서울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서, 진해에는 특설기지가 설치되어 교육과 군수(軍需) 및 공창(工廠) 운영 등의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해특설기지의 사령장관(司令長官)으로는 해사대학(海士大學:해안경비사관학교의 바뀐 이름) 교장으로 재직중이었던 김일병(金一秉) 대령이 전임되어 왔다.
당시 인천·부산·목포 등 일반 해역기지의 지취관은 00(지역명) 기지 사령관이라고 호칭했으나, 진해 지역에 한해서는 '진해특설기지'라고 부르고, 그 지휘관 역시 '사령장관'이라고 하여 일반 기지 사령관과는 구분해서 불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9월 5일부로 조선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발족이 되었다. 아울러 진해특설기지는 "해군 진해 통제부(統制府)‘라 하고, 또한 그 지휘관은 '통제부 사령관’으로 부르게 되었다.
정부가 수립된 지 얼마 안된 10월 1일, 여수(麗水)·순천(順天)지역에서 육군 제14연대의 반란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해군은 해상으로부터 반란군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아 출동하게 되었다.
당시 해군 진해 통제부 사령관 김일병 대령이 나를 불러서 말하기를, "귀관은 해방 전에 만주군으로서 전투 경험을 쌓은 터이니, 이번의 반란군 진압 작전에 해군 작전 지휘관으로 출동해 주어야겠네."라고 하였다. 사령관으로부터 지체하지 말고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나는 해군 함정 4척을 이끌고 출동하여, 우선 여수 항(港) 주변 일대를 점령한 다음, 해상으로부터 반란군을 진압하는 임무에 증사하였다.
이 작전의 끝난 뒤, 나는 해군의 상륙 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 즉 해병대(海兵隊) 창설의 필요성을 부기(附記)한 전투상보(戰鬪詳報)를 제출하였다. 이것이 바로 한국 해병대 창설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첫걸음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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