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 6·25 동란과 해병대
1950년 북한 공산군의 전면 남침으로 6·25동란이 발발하였을때, 해병대는 최후방인 제주도에서 이를 맞게 되었다. 이에 해병대는 지휘관이나 사병을 막론하고 그간의 문제는 접어두고 모두 합심 협력하여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고 극복해 나가는 데 전력을 바치게 되었다.
동란이 발발하자 제주도 지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나는 이 지역의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6월 말까지 제주도의 각지로부터 약 3,000명에 달하는 청년과 학생들이 해병대에 지원해 왔다. 당시 나는 우리 해병대에 지원해 온 용감한 젊은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진정한 애국심, 불타는 애국심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매우 마음이 든든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해병대는 비록 그들에게 지급할 소총조차 없었지만, 앞으로 닥쳐올 전투에 대비하여 목총(木銃)으로나마 맹렬한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해병대에도 동원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에 나는 7월 13일, 제1차로 고길훈 소령이 지휘하는 1개 대대를 군산(群山) 방면으로 출전시켰고, 이어서 8월 1일에는 김성은 중령이 지휘하는 1개 대대를 진주에서 가까운 진동리(鎭東里) 방면으로 출전시켰다. 그 뒤에 제주도에 남아 있던 해병대 사령부 및 잔여부대 병력은 일단 진해로 총집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9월까지 진해로 이동, 집결을 완료하여 다음 작전에 대비하였다.
이 무렵 그동안 제주도에서 같이 지내왔던 군인 가족들은 부득이 제주도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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