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2) 인천 상륙작전
해병대 사령부가 진해로 이동을 완료한 9월 2일, 당시 대구에 와 있던 국방부 장관이 급히 나를 만나고자 한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나는 지난 4월, 역시 국방부 장관의 부름으로 학과 공부 도중에 서울로 달려갔던 일을 회상하면서 급히 대구로 향했다.
나를 만난 신성모 국방장관은, "나는 해병대를 완전 무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자네의 소망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네. 이제 귀관이 소원하는 대로 해 줄 터이니, 자네는 즉시 진해로 돌아가서 전 병력을 대구로 이동시키도록 하게.“ 라고 지시하였다.
이때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함정을 입수하기 위한 교섭차 선편(船便)으로 미국을 향하던 도중에, 6·25 동란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되돌아 와서 부산에 상륙한 뒤, 전세(戰勢)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나는 직속상관인 손 제독에게 국방부 장관의 특별지시 사항을 그대로 보고하였다.
그 러자 손 제독은 지금 해병대를 긴요하게 사용할 계획이 있는 터이니, 대구로 이동하는 것을 일단 멈추고 진해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에게는 손 제독이 직접만나서 설명하겠노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에 드디어 해군 참모총장으로부터 해병대는 9월 8일까지 부산에 집결 완료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에 해병대는 즉각 부산으로 이동하였고, 여기서 무기와 피복 일체를 신품(新品)으로 공급받았다.
이 무렵 동경에 있는 UN군 총사령부에서는 북한 공산군을 섬멸하기 위한 작전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아군의 반격을 위하여 상륙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상륙부대가 상륙해야 할 지점을 어디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란이 많았다. 결국, 군산(群山)·원산(元山)·인천(仁川) 등의 후보 지점 가운데, UN군 총사령관인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인천에 상륙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뒷날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바로 이때 결정된 인천 상륙작전에 우리 해병대가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써 해병대는 창설된 지 불과 1년 반 만에 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나, 제주도에서 급히 모집한 신병에 대한 교육 훈련을 비롯하여 부족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하여 나는 부산에서 새로 지급받는 신무기로써 우선 각 부대별로 동래(東萊) 사격장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교육 훈련은 상륙작전 임무를 띠고 인천으로 항해하는 함상(艦上)에서도 계속되었다.
인천 상륙을 목전에 둔 9월 12일 오전 9시 반경, 부산 부두에 대기중인 미 해군 군함 내에서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元帥)가 보내온 작전명령의 하달과 함께 세부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때 나는 한국 해병대를 대표해서 이 작전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명령전달에 이어서 인천 부두에 관한 상황설명과, 각 부대별로 목표 지점에 상륙진입하는 방법 등에 관한 세부적인 지시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퇴함(退艦)할 때, 회의 참석자 전원은 군함의 출구에 비치된 장부에 서명을 하였다. 그것은 작전 명령의 내용에 관한 비밀엄수를 서약하는 서명이었는데, 특히 인천이 상륙목표지점이라는 사실은 극비(極秘)에 속하는 사항이었다.
인천 앞바다는 간만(干滿)의 차가 심하여 상륙작전에 불리한 지역이어서 적으로서는 상륙작전을 미처 예상할 수 없는 터였기에, 더욱 맥아더 장군의 작전구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렇게 작전 면에서 뛰어난 선견지명을 지녔던 맥아더 장군의 직접지휘 아래 총 3,000명에 달하는 우리 해병대는 1950년 9월 15일 17시경, 미 해병 제1사단과 합동으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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