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초대사령관 신현준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머린코341(mc341) 2014. 7. 4. 11:59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6·25 동란이 발발한 후 한동안 수도 서울을 비롯한 남한의 많은 지역은 적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아군은 매우 고전(苦戰)을 치러야만 하였다. 그러던 중에 맥아더 장군의 결단으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戰勢)는 역전되었고, 마침내 1950년 9월 26일 17시경에는 사실상 수도 서울을 탈환, 수복하게 되었다.

 

  우리 해병대가 서울 시내로 진입하였을 때, 시민들이 모두 피난하거나 숨은 탓인지 거리에서는 거의 사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군의 서울 진입을 알게 된 일부 시민들은 감격에 넘치는 환호성으로 우리 해병대를 맞이해 주기도 하였다.

 

  당시 가장 선두에서 진격중이던 제2대대 6중대의 박정모(朴正模) 소위가 이끄는 소대원들은 9월 26일 아침, 한창 시가전(市街戰)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중앙청(中央廳)에 돌입, 태극기를 게양하는 공훈을 세웠다. 우리 해병대는 이러한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고 난 뒤, 모두 벅찬 감격과 기쁨에서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인 9월 27일, 우리 해병대는 거의 폐허처럼 되어버린 서울 시내의 거리를 말끔하게 청소하였다. 이것은 9월 28일로 예정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서울 환도(還都)를 영접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수도인 부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수도 서울의 탈환에 대해 무엇보다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서울이 아군에 의해 완전히 탈환 수복되자, 맥아더 장군은 직접 부산으로 가서 이승만 대통령을 서울로 모시고 왔다. 그리하여 9월 28일 오전 10시에는 중앙청(中央廳) 안의 광장에서 역사적인 수도탈환식이 거행되었다. 이 행사는 그 동안 적의 점령 아래 있었던 수도 서울을 이제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인도한다는 뜻을 지닌 기념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하여 한·미 양군의 합동 작전이었던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하였다.

 

  수도 탈환식이 거행되는 동안, 중앙청 천정에서는 부서진 건물조각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행사 참석자는 모두 철모를 쓰고 있어야만 하였으나, 별일없이 이 역사적인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