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5) 북진과 중공군의 개입
감격스런 수도 탈환식에 참가하였던 우리 해병대는, 그 날 오후부터 다시 서울 동북방으로 진출하여 북한강(北漢江) 일대의 적의 잔당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앞으로의 작전은 오직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10월 4일, 참모들을 대동하고 당시 원산(元山)방면에 진출하여 작전중이었던 미 육군 제1군단장 알몬드(Almond) 장군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비한 사전 협의차 군웅용 편으로 원산으로 갔다.
이후에 우리 해병대의 주력부대는 인천에서 군함 편으로 원산에 도착한 뒤, 다시 함흥(咸興)까지 북상하게 되었는데, 부여받은 임무는 함흥과 평양 사이의 통로 주변을 수비하고 경계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인 10월 25일, 중공군(中共軍)이 한국전에 개입함으로써 전세는 다시 아군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UN군 지휘부는 전략상 중공군과의 접전(接戰)을 피하고 북한지역에서 후퇴한다는 작전지침을 하달하였다.
이에 우리 해병대의 전 병력은 12월 9일, 야간에 항공기 편으로 포항(浦項)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시간적인 제약으로 매우 급하게 철수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부 병력은 포항이 아닌 일본의 히로시마(廣島)나 구주(九州) 지방에 내려지기도 하였고, 또한 출발시 항공기 사고로 피해가 발생하는 등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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