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3) 인천 상륙과 진격
내가 지휘한 우리 해병대의 상륙목표지점은 인천부두의 '청색해안(靑色海岸, Blue Beach)'이라 이름 붙여진 지점이었다. 맹렬한 함포사격의 지원으로 인하여 인천부두의 상륙지점인 청색해안과 적색해안(赤色海岸, Red Beach) 및 월미도(月尾島) 일대는 온통 불바다가 되었고, 아군의 치열한 공격에 견디다 못한 적은 마침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인천부두와 해안일대의 점령에 성공한 한·미 해병들은 15일 밤에는 해안지대에서 야영한 다음, 16일부터 수도 서울을 향해서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해병대는 서울의 외곽인 104고지 서쪽의 고지대까지 도달하였는데, 우리의 임무는 적이 점령중인 104고지를 탈취, 점령한 다음, 연희고지(延禧高地)를 지나서 서울 시내로 진격하는 일이었다.
이때 인천상륙 후 줄곧 우리 해병대와 행동을 같이 해 온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미 해병대 제1연대장 포니(Forni) 대령에게 특별한 요청을 하였다. 이것은 아군의 전방에 위치한 104고지 점령임무를, 이번에는 한국 해병대에 맡겨 주기 바란다는 요청이었다. 이에 대해서 포니 대령은, 한국 해병대를 위하여 24시간을 한도로손 제독의 특청(特請)에 응하기는 하겠으나, 서울 입성을 위한 시간적인 제약도 있으니 그 이상 시간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대답하였다.
당시 포니 대령은 그동안 전투상황을 관찰해 온 결과, 우리 해병대가 지니고 있는 전투 능력을 대략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길훈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가 104고지 점령 임무를 맡았는데, 우리 해병대는 사력(死力)을 다해서 분전(奮戰)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부여받은 24시간 이내에 고지를 점령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결국 우리는 임무를 미 해병대 제1연대에게 인계하고 서울을 향해 계속 진격하게 되었다.
당시 갓 창설되었던 우리 해병대는 사격과 전진, 항공 지원을 이용하는 전진방법과 진출요령 및 그 순서 등을 목숨을 건 실전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익힐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비록 우리가 이미 수많은 실전경험을 통해서 잘 훈련된 미 해병대의 전투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결코 부끄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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