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1) 미국 해병대 시찰
나는 6·25 동란을 통하여 전우가 된 미국 해병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1952년 12월 2일부터 28일까지 약 4주 간에 걸쳐서 미국의 해병대를 시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미 해병대 사령관 세퍼드 대장의 초청에 따른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전황이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기에 미국 시찰 여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미 해병대측이 마련한 계획에 따라서 먼저 하와이에 위치한 미 해군 기지와 해군 병원을 둘러본 뒤, 이어서 이국 본토의 서해안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미 해병대의 본거지인 캠프 펜들톤(Camp Pendleton)을 시찰하였다. 그리고 나서 동해안 지역의 미 해병대 본거지인 캠프 리쥰(Camp Lejeune)과, 관티코(Quantico)에 있는 해병 교육기지와 해병학교를 두루 시찰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아링톤(Arlington)에서 미 해병대 사령관 세퍼드 대장의 환대를 받는 것으로 시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한국 해병대를 창설한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미 해병대를 시찰하고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었으므로 매우 기뻤고 또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미국 방문이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인상이 깊었던 여행이었다. 나는 비행기 편으로 서울을 출발, 동경을 경유해서 제일 먼저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한국을 출발할 때는 12월의 추운 날씨였으므로 동내의(冬內衣)를 입고 갔으나, 막상 하와이에 도착하고 보니 몹시 더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와이의 더운 기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내의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체면상 남에게 말할 수도 없었던 나는, 그날 저녁 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고역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교포들은 우리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정성껏 대접하였다. 그때 나는 멀리 고국을 떠나와 온갖 고생을 겪었던 우리 동포들이, 이제는 기반을 잘 잡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에 참으로 흐뭇함을 느꼈다.
다음에 도착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워싱톤을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에서도 우리들은 교포들의 영접과 환대를 받았으니, 우리는 따뜻한 동포애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당시 하와이 주재 김용식(金溶植) 총영사, 샌프란시스코 주재 주영환(朱永燥) 총영사, 그리고 워싱톤의 주미 한국 대사관의 양유찬(梁裕燦) 대사 등도 우리를 위해 여러모로 수고해 주었다.
나는 미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주처럼 넓고 큰 땅을 보지 못하였다. 이때에 가서야 비로소 미국 땅도 만주 땅 못지않게 넓고 크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견문이 좁았음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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