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3) 육군대학과 합동참모본부
1953년 10월 15일부터 해병 제1여단장으로서 1년 간 전방 근무를 한 뒤, 나는 김대식(金大植) 장군에게 임무를 인계하였다. 그리고 1954년 11월 1일, 나는 군사학(軍事學)을 재수학(再修學)하기 위하여 진해에 있던 육군대학(陸軍大學)에 입교하였다.
당시 육군대학 학장은 이종찬(李鍾贊) 중장으로서, 내가 해병대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에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분이었다. 나의 입교를 무척 반갑게 맞아주었던 이 장군에게서 나는 재학 시절을 통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본 이종찬 장군은 경우가 바르고 청렴결백하면서 누구에게나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고 하는 분이었다. 대체로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직언을 삼가하는 것이 처세의 요령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데, 이 장군은 그렇지 아니 하고 직언을 곧잘 하는 분이었다. 내가 이 장군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특별히 존경하게 되었던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나는 육군대학에 입교한 뒤 학생회장으로 추대되었는데, 이것은 재학 당시의 계급 순위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직책을 떠나서 학생들과 친교를 맺도록 노력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육군대학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있던 나는, 무슨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에 거의 매일같이 2, 3명의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하곤 하였다.
입교할 당시 벌씨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던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무겁고 벅찬 책임을 떠나서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도 기쁘고 즐겁기만 하였다.
나는 1955년 6월 30일까지 8개월 간에 걸쳐 육군대학 과정을 마친 다음, 이 해 9월 1일부로 합동참모본부 근무를 명받게 되었다. 이로써 나는 군대 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셈이었다.
나는 1958년 7월 중순까지 2년 11개월 동안의 합참본부 근무 기간중, 그 전반기의 1년 4개월 동안은 제3부장(군수)으로, 그리고 후반기의 1년 7개월 동안은 제2부장(정보)으로 재직하였다. 그동안 나는 세 분의 합참의장(合參議長)을 모셨는데, 처음에는 이형근(李亨根) 대장, 다음은 정일권(丁一灌) 대장, 마지막으로 유재흥(劉載興) 중장이었다.
육군대학에서의 수학기간과 합참본부에서 근무한 3년 9개월 동안은 나의 군 생활에 있어서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시절로 추억에 남아 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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