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5) 3·15 부정선거와 군부
내가 해병 진해교육기지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인 1960년 3월15일, 뒷날 부정선거(不正選擧)로 지탄받았던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당시 국내 정세는 선거를 둘러싸고 몹시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는데, 나는 그 영향이 군 내부에까지 침투하는 것을 보면서 몹시도 불쾌함을 느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쾌했던 것은 1960년 2월 16일, 해군 진해 통제부 사령관이 소집하여 열렸던 진해에 소재한 해군 및 해병 부대 지휘관급 회의에서 겪은 일이 었다.
이 날 아침 9시경 내가 회의에 나갔을 때, 회의장에는 주최자인 통제부 사령관을 비롯하여 해군 함대 사령관, 해군 사관학교장, 해군 교육부장, 해군 조함창장(造艦廠長) 등의 군 관계자 외에 진해 경찰서장이 참석해 있었다.
정각 9시에 회의가 시작되었는데, 알고 보니 회의를 소집한 해군 통제부 사령관은 명목상의 주최자이고, 실질적으로는 진해 경찰서장이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회의의 주된 목적도, 3월 15일로 다가온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재당선시키기 위한 군 내부에서의 공작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강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해병 특수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현장에 나가 볼일이 있어서, 회의 중간에 휴회(休會)하는 들을 타서 회의장에서 빠져나왔다.
얼마 뒤인 3월 1일, 나는 진해 교육기지 사령부 광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게 되었다. 전 장병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나는, 그때까지도 2월 16일의 회의에서 느꼈던 불쾌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었던 탓인지, 기념사 가운데 "나라의 정권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서는 교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이 한마디 발언이 문제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기지에 소속된 어떤 고급 장교가 내게 달려 오더니, "사령관님께서 오늘은 너무 하셨습니다. 공식적인 기념사에서 그러한 정치적 발언을 하시다니 잘못하신 겁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내심 불쾌하였지만, 3·1절 자체가 정치와는 끊을 수 없는 날이기에 무의식중에 그런 말을 한 모양이라고만 대꾸하였다.
그리고 나서 국회의원 몇 사람이 진해를 다녀가면서 나와 면담을 요청하여 이에 응한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나의 언행(言行)에 대한 감시도 행해지기도 하였다.
선거를 이틀 앞둔 3월 13일은 마침 일요일이었으므로, 나는 성당에 가서 아침 9시 주일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본당 주임인 김 신부가 강론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그 뒤에 서 있는 분들, 여기 앞에 자리가 비어 있으니, 이리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및 사람이 그만 무안한 듯이 밖으로 나가고 말았는데, 그들은 바로 나를 감시하고 있던 사복 차림의 특무대원들이었던 것이다.
선거 당일인 3월 15일 아침 11시경, 서울에 있는 해병대 사령부의 김대식(金大植) 사령관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 왔다. 김 사령관의 전화는 지난 번 3·1절 기념사에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였는지 지금 매우 시끄럽게 되었다고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문제는 그보다도 지금 마산(馬山)에서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는 시위로 크게 소란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김 사령관은, 그렇다면 어서 속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며 전화를 끊었다.
3월 15일의 마산 사태는 점차 수습되었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계속 확대되어 결국은 4·19 학생 의거로 이어졌고,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시 내가 가장 불쾌하게 여겼던 일은 바로 군 지휘관 회의에 경찰서장이 참석하였던 사실과, 더욱이 그의 주도로 대통령의 재당선을 위한 정치적 공작을 군에 대해 요구하게끔 되었던 당시의 현실이었다. 이것은 내가 매우 존경하였던 이종찬 장군의 신념과도 같이 군의 정치적 중립(中立)을 신조로 하는 군인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유감지사(遺憾之事)였던 것이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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