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4) 미 육군참모대학에서 연수
합동참모본부 근무를 마쳤을 때 나의 나이는 43세였다. 이때 나는 전역(轉役)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라는 생각에서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육군참모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이보다 앞서 나는 합참본부 재직중 퇴근 후에는 곧바로 E.L.I.(English Language Institute)에 나가서 3년 간 영어 공부를 하였었다.
마침내 나는 소망하던 대로 미국 캔사스 주에 있는 육군참모대학(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Fort Leaven Worth Kansas)에 입학하여 1958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단기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나는 일찌기 만주에 살 때부터 일본어와 중국어를 익혔으나, 영어 공부는 30세가 지나서야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미국 육군참모대학 재학중에도 정규과목이 끝난 뒤에는 특별히 개인 교사를 소개받아 영어 공부를 계속하였다.
해병 출신의 장교로서 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내가 첫번째였는데, 이로써 장차 해병출신 장교가 계속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뒤, 나는 1959년 1월 10일부로 해병 진해교육기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정예해병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훈련에 전념하던 중인 1960년 6월 25일,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나는 7월 1일부터 당시 이종찬 국방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어 9개월 간 근무한 뒤, 다시 국방차관보(國防次官補)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 직책이 군 복무에 있어서의 마지막 직책이 되었다.
1961년 4월 1일부로 국방차관보가 되어 일해 오던 중, 이 해 5월에 이른바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7월 4일부로 예편(豫編) 되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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