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3) 나의 麗水 出陣
군산으로 출동했던 고길훈부대가 제주항을 떠나 군산으로 출동한지 불과 1주일도 채 못되던 7월 20일 나는 뜻밖에도 그 전투부대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어 1개 중대의 증원병력(제7중대)을 이끌고 우리 해군 LST에 승선하여 21일 여수항으로 떠났다.
내가 그 병력을 이끌고 여수항으로 떠나게 된 까닭은 바로 그날 군산을 철수하여 목포를 거쳐 여수항에 도착할 예정인 고길훈부대가 여수항에서 합류하여 고길훈 소령과 임무를 교대하기 위함이었다.
7월 13일 제주항을 출항하여 15일 아침 군산에 상륙했던 고길훈부대는 군산 시내에 있는 해양대학을 숙영지로 정하여 당국에서 추진 중인 군산항 정부미의 해상 반출작업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한편 수색대를 장항으로 추진시켜 적정을 탐색하게 한 다음 군산으로 기동해 올지도 모를 적을 저지하기 위해 2개 중대의 병력을 장항 북방일대의 고지로 진출시켜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군산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는 적의 선견부대를 요격하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대원들이 무장하고 있던 99식 소총으로는 적의 본대와 대적할 수가 없어 일단 군산으로 철수해 있던 중 육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1개 중대를 이리(裡里)로 보내어 육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그리고 약 200명의 주력부대는 적이 신성리(新城里)에서 금강을 도하하여 군산 남동쪽으로 포위망을 압축시키는 상황 속에서 부득불 군산에서 철수, 이리에서 작전을 마치고 목포로 철수하여 목포항에 집결해 있을 예정인 1개 중대를 승선시키기 위해 목포항에 기착했다가 여수항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여수로 떠나을 때 나는 후임 참모장이 미처 임명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계엄사령관의 직무까지 관장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망한 신 사령관에게 모든 일을 죄다 떠맡기고 온 것 같아 마음속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인솔해간 7중대는 해병대가 제주도로 이동한 직후 해군에서 해병대로 추가 전입한 약 120명의 해군14기 출신 신병들이었는데, 사령부에서는 그 중대를 제7중대로 명명하여 안창관 중위에게 그들에 대한지상훈련을 담당하게 한 다음 그를 7중대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내가 여수항에 도착한 시각은 그 날 오후 6시경이었다.
그 때 여수항 부두에는 군산에서 목포항을 거쳐 여수항에 도착해 있는 고길훈부대가 승선한 LST가 도착해 있었다. 고길훈 소령과 나는 모든 병력을 하선시켜 여수역 광장에 집결시켜 놓은 상태에서 별다른 절차도 없이 지휘권을 인수 인계했다.
한편 LST가 여수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해군본부로부터 발신된 전문 한 통을 받았다. 그 전문의 내용은 남원(南原)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에 배속되게 되었으니 그 전투사령부의 작전지휘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수역 광장에 집결해 있는 동안 나는 남원역에서 여수역으로 걸려온 서부지구 전투사령부의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건 관계관의 고지사항 역시 배속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러한 사실을 통고해 주면서 그 관계관은 열차편을 이용해서 가능한 한, 빨리 남원으로 오라고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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