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6) 西部地區 戰鬪司令部

머린코341(mc341) 2014. 7. 20. 12:49

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6) 西部地區 戰鬪司令部

 

  잠시 후 나는 병력을 열차 속에 그대로 승차시켜 둔 채 도착신고를 하기위해 남원 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서부지구 전투사령부를 찾아갔다.

 

  당시 남원에 주둔하고 있던 그 서부지구 전투사령부와 그 전투사의 기간사단인 육군 7사단은 7월 초 호남지구에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급편을 하게 된 부대들이었다.

 

  이들 부대에 대한 편성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적군의 중앙우익사단인 4사단이 천안에서 공주-논산-대전선으로 공격을 하고, 중앙좌익사단인 3사단이 천안에서 조치원, 대전으로 공격을 펴고 있을 즈음, 적 2군단의 우익에 배치되어 천안에서 예산 방면으로 지향하고 있던 6사단의 작전기도는 예산과 장항 및 청양을 차례로 석권한 다음 금강을 건너 함양과 이리 및 전주를 공격함과 동시에 광주(光州)로 남진하여 남해안으로 우회할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그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이러한 부대들을 급편한 것이었는데, 7월 초 전주에서 편성된 이들 부대가 남원으로 이동한 날짜는 전주가 점령당한 그다음 날인 7월 22일이었다.

 

  그리고 그 전투사령부는 다음과 같이 편성되어 있었다.

      사령관 육군소장 신태영(申泰英)

      참모장 육군준장 원용덕(元容德)

   7사단

      사단장 육군대령 민기식(閱機植)

      참모장 중령 백남권(白南權)(7월 초 전북지구에서 편성한 7사단은 명목상 2개 연대 규모의 신병으로 편성했으나 무기와 장비가 없어 그 신병들을 부산으로 보내고 없었으므로 약 300명의 사단본부 요원들만이 투입 가능한 병력이었다.)

       민기식부대(약 600명, 7사단 본부요원 300명과 진주로부터 철수한 낙오병과 남원에서 편성 중인 30연대(가칭)로부터 인수한 1개 소대 규모의 무장병력을 통합해서 편성.)

      오덕준부대(약 700명, 진주에서 편성한 학도병)

      이연규부대(약 500명, 순천에 배치되어 있던 육군 15연대 2대대)

      김병화부대(1개 대대 규모, 육군본부에서 파견)

      김성은부대(해병대, 371명 )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