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11) 晋州地區 戰鬪
산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해병대가 진주로 이동한 시각은 29일 오후 5시경이었으며, 해병대는 그 곳에서 7사단장 민기식 대령의 지시에 따라 미 24사단 19연대의 작전지휘를 받았다.
7월 중순 금강지구 전선과 대전에서 큰 손실을 입고 재편 중에 있던 미 24사단이 진주지구에 투입이 된 것은 7월 25일이었다. 미8군에 의해 전용(轉用)된 미 24사단 19연대는 25일 진주로 이동함과 동시에 일부 병력을 안의로 보내고 34연대는 주력을 거창(居昌)으로 전개시켰는데, 그 당시 하동(河東)을 점령한 북괴군 6사단은 진주 서방 약 10킬로 지점의금귀리(金貴里) 서쪽 고지에 사단본부를 설치하여 일부 병력을 사천(泗川)에 침투시킴으로씨 진주시를 서남방에서 압박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미 24사단 19연대장으로부터 남강의 남쪽 기슭을 따라 하동 방면으로부터 침입해 오는 적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 나는 7월 30일 남강 북쪽의 망진산(△137) 일대에 포진한 미 육군부대의 우익이 되어 남강 동남쪽의 만경산(△135) 일대에 포진하여 적의 침공에 대비했는데 그 날 19연대에서는 해병대의 작전을 지원해 주기 위해 1명의 포병 연락장교를 포함한 2명의 연락장교를 파견해 주었다.
한편 그날 오후 집결지인 금성국민학교 교정에서 미육군 19연대에 배속이 되었던 해병대는 아쉬운 것이 있으면 지원해 주겠다고 말한 연대장(무어 대령)의 배려로 BAR 10정과 SCR-300(무선통신기) 3대 및 클립에 끼워져 있는 상당량의 Ml소총 실탄을 지원받았는데, 특히 미국들이 두대의 무선통신기를 가지고 이쪽 저쪽에서 시험교신을 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해병들은 그 통신기의 안테나에 와 닿는 또랑또랑한 말소리가 얼마나 신기하게 들렀던지 그 놀라운 통신기의 마성(魔性)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나는 나대로 간밤에 백암산의 수색소대장과 내가 저런 통신기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편리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비록 빌려 쓰게 된 것이긴 했지만 그 놀라운 통신장비를 직접사용하게 된 통신대장 이두찬 소위와 통신병 문창구 하사 등은 얼마나 신명이 났던지 두번, 세번 시험교신을 해보면서 싱글싱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진주지구의 전투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30일 오후 4시 30분경 미군들이 포진한 남강 북쪽의 망진산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여 점차 해병대가 포진한 만경산 쪽으로 번져왔다.
그러다가 밤 9시 30분경 보슬비가 폭우로 돌변하는 가운데 피아군의 공방전은 더욱 가열하여 미군들과 해병들은 물귀신같은 몰골로 밤새도록 적과 싸웠으나 그 다음 날 새벽 3시경이 되자 태풍이 지나간 후의 적막감 같은 고요가 온 누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전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망진산의 미군들은 어디론가 철수를 해버리고 없었고, 공격을 하고 있던 적군 역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따라서 나로서는 진주시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직감했던 나머지 미군 연락장교들과 대책을 의논코자 그들을 찾았으나 어느새 종적을 감춰버렸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그래서 나는 날이 밝을 때까지 상황을 살피고 있다가 그 때까지 우군부대로부터 아무런 기별이 없어 연락이 단절된 것으로 알고 기동하기 용이한 마산 방면으로 철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지 후방으로 나있는 도로의 삼차로, 즉 진주시로부터 사천과 마산으로 갈라지는 도로의 분기점 일대를 만약에 적이 차단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나는 일개 중대를 은밀히 뽑아내어 날이 밝기 전 그 길목 일대를 장악하도록 조처했는데, 다행히도 그 곳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날이 밝은 후 진주 시가지 쪽의 적정을 살펴보기 위해 만경산 고지 오른편 쪽으로 흐르고 있는 남강 건너편의 촉석루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직선거리 약 500미터 지점에 있는 그 촉석루 위에 인민군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진주시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따쿵! 하는 소리가 함께 나에게 겨냥된 총탄 하나가 내가 서 있는 발 앞에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했다.
그 전날 오후에는 19연대로부터 빌린 안테나가 달린 무선통신기(SCR-300)를 등에 걸머진 통신병을 데리고 만경산의 능선 위에 올라갔더니 마치 나를 기리고 있었다는 듯이 총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저들이 용하게도 나를 지휘관인 줄 알고 저격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는 절대로 통신병을 데리고 능선 위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내가 이번에는 망원경으로 인해 저격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었다.
촉석루에서 총성이 들린 후 적병들은 해병대가 배치되어 있는 만경산을 향해 한참 동안 박격포탄과 기관총탄을 날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우군부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나는 내가 결심했던 대로 삼차로 부근에 배치해 둔 2중대의 엄호 하에 9시 30분경 마산으로 철수를 개시했다.
그날 새벽 만경산의 해병대만 남겨 두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던 그 24사단 19연대의 잔여병력(3대대)은 27일 진주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소재에서 적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거의 전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한편 나는 우리 부대가 작전상 일시 배속되어 있던 미군부대의 실종으로 전투가 끝나는 즉시 현지에서 반납하기로 약속했던 그 3대의 SCR-300과 10정의 BAR 자동소총을 되돌려 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특히 3대의 SCR-300을 보유하게 된 것을 큰 횡재로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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