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14) 2中隊의 誤認射擊

머린코341(mc341) 2014. 7. 25. 21:02

국방의 멍에 - 5. 6·25戰爭과 海兵隊

 

(14) 2中隊의 誤認射擊

 

  결심을 굳힌 나는 우선 부대본부에 대기시켜 둔 2명의 2중대 대원들중에서 2명의 전령을 차출하여 부현으로 보냈다. 중대장에게 부대가 곧 철수를 개시하니 엄호할 태세를 갖추도록 하라고 지시한 다음 이미 수집해놓은 노획무기 이외의 차량장비 등은 모조리 불태워 버리거나 부셔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7중대가 하산하자마자 즉시 부대본부, 7중대 순으로 전술대형을 갖추어 철수를 개시하고 3중대는 그 적을 격퇴시킨 다음 후속부대로 따라오도록 지시했는데, 뜻밖에도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었음인지 때마침 4대의 F 51 무스탕 전폭기 편대가 상공에 나타나더니 3중대의 박격포 공격을 받고 있는 그 적산 쪽의 적을 기총소사와 로켓포탄 등을 퍼부으면서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아군의 철수를 도와주고 있었고, 10여분 후 우군기 편대가 상공에서 사라지자 또 다른 우군기 편대가 출현하여 그 적들을 혼비백산 시키고 있었으니 나로서는 하늘이 우리 해병대를 돕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워낙 절박했던 그 당시로서는 그런 생각을 해볼 겨를조차 없었지만 만약에 그 때 내가 저 우군기들이 우리를 적으로 오인하여 우리 해병들을 공격했더라면 우리 부대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쭉 끼쳤다.

 

  한편 3중대의 엄호 하에 7중대와 부대본부 장병들을 이끌고 2중대가 배치되어 있던 부현으로 향하고 있던 나는 지열이 훅훅 달아오르는 그 8월 초의 더위가 얼마나 심했던지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대원들이입고 있는 단별 전투복은 빗물같이 흘러 내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특히 새벽의 요격전과 아침나절의 고지 정상 탈환전에서 여남은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7중대 대원들은 부상자들과 노획무기를 운반해 가느라 말할 수 있는 곤욕들을 치르고 있었다. 부축만으로 보행이 가능했던 경상자들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들것을 가지고 운반해 가야만 했던 중환자들에게는 부상자 한 사람에 최소한 2명 내지 4명의 인원이 있어야 했으므로 상당수의 인원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들은 가마니의 네 귀통이에 굵직한 나무 막대기를 양쪽으로 째어서 만든 들것을 이용해서 운반했는데, 들것에 실려 가고 있던 환자들도 그 무서운 뙤약볕과 환부의 통증 때문에 빈사지경을 헤매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맨 선두에서 부대를 이끌어 가고 있던 나는 농짝만한 바위들이 수없이 널려 있는 협소한 부현 골짜기를 한참 동안 지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그 골짜기 오른쪽 능선지대로부터 가해진 강력한 사격을 받고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 골짜기 어디엔가에 2중대가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뜻밖의 이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박격포탄이 꽝꽝 터지고 기관총을 비롯한 각종 화기들의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오고 있었다. 좁은 계곡에 퍼부어지고 있는 그 화력이 얼마나 강하게 느껴졌던지 나는 문득 이런 생각까지 했다. 즉 함양이나 진주 만경산에서 만났던 인민군은 가짜 인민군이고, 육군이나 미군이 감당을 하지 못한 그 진짜 인민군이 여기에 나타났구나. 이젠 죽었어, 내가 여기서 최후를 마치게 되다니‥‥‥ 하는 따위의 절망적인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암팡지게도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놈들이 세면 얼마나 세겠어. 저 놈들에게 진짜 해병대 맛을 한 번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새 사격이 빗발치고 있는 전방 방향의 폭을 재고 있던 나는 곁에 있는 7중대장에게 놈들의 배후를 찔러야 되겠으니 1개 소대 가량의 대원과 기관총 2문을 가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리하여 한참 동안 맹위를 떨치고 있던 사격이 잠시 뜸해질 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때가 이르기가 무섭게 농짝만한 바위들을 차폐물로 삼아 숨가쁜 각개약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실탄이 미치지 않고 있는 그 윗쪽 능선지대로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 다음 뒤따르고 있는 대원들과 기관총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총성이 멎은 듯한 느낌이 들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각개약진을 하고 있는 동안 분명히 들리고 있던 요란한 총성이 뚝 멎어 있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었던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견딜수가 없었다. 혹시 아군이 전멸을 당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적에게 투항이라도 했단 말인가? 2중대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똘똘한 대원 한 사람을 아래로 내려 보내 그 영문을 알아보게 했는데, 그로부터 약 2O분 후 나는 7중대와 3중대는 물론 그 전날 부현으로 보낸 그 2중대 장병들까지 열을 지어 능선 위로 올라오고 있는것을 보고서는 어찌나 기가 찼던지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2중대가 한 집안 식구들을 적으로 오인하게 된 이유를 캐본 결과 부현으로 보낸 그 2명의 2중대 전령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데다 행색이 초라한 해병들이 꼭 인민군같이 보여 현장에 나와 있던 부부대장 김병호 대위의 사격지휘 하에 사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했고, 도중에 사격을 중지하게 된 이유는 처음부터 반신반의했던 어떤 하사관이 "오-이 해병대!!" 하고 소리쳐 본 것이 극적인 신호가 되어 서로를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날 부대본부에서 비상식량 조로 구입해서 끌고 가던 두 마리의 소가 천지를 진동시킨 그 총 포성에 놀라 길길이 뛰며 달아나 버린 그 손재와 각개약진을 할 때 내 뒤를 바싹 따르다가 내가 급히 정지할때 내 구두 뒷 축에 안면(오른쪽 눈 밑 부위)이 찍힌 7중대장 안창관 중위의 부상, 그리고 1개 소대의 병력과 함께 능선을 우회해 오던 도중 행방불명이 된 7중대 본부소대장 염태복 상사(준장 예편)와 수색소대 선임하사관 김익태 상사를 비롯한 몇몇 대원들의 실종사고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기 망정이지, 만약에 그때 그와 같은 오인사격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기라도 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때 능선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행방이 묘연했던 그 염태복 상사 일행은 그 길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함안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다시 마산을 거쳐 진해로 가서 아군부대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 뒷 얘기는 별도로 언급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을 겪게 되었던 나는 뒤늦게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

 

  즉 진주 금성국민학교 교정에서 미군들로부터 SCR-300 무선통신기를 지원받을 때 야간이동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서북산에서 숙영을 한 다음 함안으로 철수하기로 마음을 굳했다. 병력이 집결하자 나는 수색소대장과 중대장들을 불러 모아 4주방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다음 각대별로 정찰조를 편성하여 고지 밑에 있는 마을로 내려 보내 적정을 수립하는 한편 저녁 요깃거리를 장만해 오도록 했다.

 

  그 전날 오후에는 대원들이 부대 보급관이 조달해 준 된장이 발린 주먹밥 한 덩어리씩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날 하루는 새벽녘부터 상황이 터지는 바람에 진종일 굶은 상태에서 죽을 고생들을 감내해 온 것이었다.

 

  따라서 부대장인 나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녁 요기만은 시켜야 할 처지였으므로 그때서야 비로소 2중대의 오인사격 때문에 놓치게 된 그 두 마리의 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소를 놓치게 한 부부대장 김병호 대위가 말할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나의 애타는 심정과는 달리 그로부터 약 3시간 후에 돌아왔던 순찰조 대원들은 나에게 또 다른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요깃거리라곤 전혀 장만해 온 것이 없고 20~30정의 노획무기만을 들고 온 것이었다. 그 연유를 알아본즉 주인들이 피난가고 없는 빈 집에서 자고 있는 적병들을 처치하고 그들의 무기를 거두어 온 것이라고 했다.

 

  한편, 서북산의 일야는 말할 수 있이 고달프고 처량했다. 해가 지자마자 기온이 급강하하여 허기진 대원들을 추위에 떨게 했고, 한밤중이 되자 진동리의 미군 포진지에서 발사하고 있는 듯한 포탄이 간혹 서북산에떨어져 가뜩이나 고달픈 잠을 방해하고 있있다. 심야에 발사되고 있던 미군들의 포는 적진에 대한 교란사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북산에서 하룻밤을 세운 나는 날이 밝자마자 부대를 점검한 다음 함안으로 향했다. 출발에 앞서 나는 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 즉 반드시 식별이 용이한 능선줄기를 집총자세로 걸어가되 가는 도중 우군기가 날아오더라도 우리를 적군으로 오인하여 공격을 할지 모르니 즉시 몸을 숨기라고 했는데, 실제로 우군기로 인한 피신소동을 벌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함안 근교의 어떤 길목에서는 소수의 한국 육군병력과 마주치게 되었으나 서로 오인사격을 할 만큼 위험한 대면은 아니었다.

 

  부대가 함안국민학교에 집결했던 시각은 8월 6일 오전 11시경이었다. 함안국민학교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태산같은 걱정을 하고 있던 1중대가 그 곳에 집결해 있어 나를 반갑게 했다. 그리고 그 곳에 와있던 서부지구 전투사령관 이응준 소장은 해병들이 들고 온 150여정의 노획무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에게 그간의 전투경위를 물어본 그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고 말하면서 해병들의 노고를 치하해 마지 않았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