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6. 진동리 지구 전투 (1) 킨 特殊部隊의 反擊作戰

머린코341(mc341) 2014. 7. 25. 21:03

국방의 멍에 - 6. 진동리 지구 전투

 

(1) 킨 特殊部隊의 反擊作戰

 

  8월 6일 함안에 집결했던 해병대는 서부지구 전투사령관의 통고에 따라 미육군 25사단의 작전지휘를 받게 되었다.

 

  해병대가 미 25사단에 배속된 것은 8월 7일부터 전개하게 된 미 25사단의 반격작전에 참가하게 된 때문이었다. 미 25사단장 킨 소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을 했던 그 '킨 특수임무 부대의 반격작전'은 다음과 같은 목적과 배경을 지닌 작전이었다.

 

  즉 7월 하순경 하동·진주를 점령한 북괴군 6사단이 부산의 서쪽 관문이며 그 남동쪽의 군항기지 진해와 인접해 있는 마산을 노리게 되자 미8군사령관은 기히 투입이 돼있는 미 24사단 19연대와 민기식·김성은 부대만으로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경북 상주(尙州)지구로 향하고 있던 미 육군 25사단을 마산지구로 전진시키는 한편, 바로 그 무렵에 한국에 도착한 미해병 1여단(5연대) 등 모든 증원부대를 미 25사단에 배속시켜 진주를 탈환하기 위한 개전 이래 최초의 반격작전을 감행한 것이었다.

 

  미25사단의 작전지휘를 받게 된 해병대는 그날 오후 1시 30분경 미 25사단 트럭에 분승하여 오후 3시 30분경 마산을 경유하여 진동리에 도착했는데, 마산을 경유할 때 성호국민학교에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그 곳에는 이틀 전 부현에서 오인사격을 받고 있는 동안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던 7중대 본부소대장 염태복 상사 일행이 나타나 특히 나와 7중대 장병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부대가 진동리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서는 이러한 오폭사고가 발생했다. 즉, 때마침 출현한 우군기 편대가 진동리 부락을 폭격하여 40여 채의 가옥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적기로 착각했으나 알고 보니미 해병대 소속 콜세아 전투폭격기(F-44)라는 것이었다.

 

  한편 진동리에 집결하게 된 해병대는 미 25사단의 명령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대를 배치했다. 즉 2중대를 덕곡리 저쪽 고지 일대 3중대를 부산리 고지 일대에 배치하고 예비대인 7중대를 진동국민학교 동쪽에 배치했다. 그리고 부대 지휘소는 진동리 지서에 설치하게 되었는데, 그날 미군들과의 통역은 마산에서 우리 부대를 찾아와 주었던 홍종혁씨가 맡아 주었다. 그 후 해병대 장교가 되었던 그 홍종혁씨(그 후 홍성은으로 개명)는 미국 아메리칸 대학 출신의 국제정치학 박사로서 8·15 직후 마산 미군정청 군정관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바 있었다.

 

  그날 진동리에 도착한 후 나는 진동국민학교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있던 미 육군 27연대장(25사단) 마이클레스 증령과 인사를 나누었다. KMC와 함께 진주를 공격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던 그는 8월 7일미 육군 5연대 전투단과 임무를 교대하고 마산으로 이동했는데, 미 8군 예비대가 되어 진동리를 떠났던 그 27연대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다부동(多富洞) 동쪽 3킬로 지점의 새술막(칠곡군 가산면 천평동)에서 대구로 진공 중인 북괴군 13사단을 격파하여 전사상 길이 빛날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마이클레스 중령은 그 후 주한 미 8군사령관, 유엔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날 밤 부대 지휘소 근처에는 밤새도록 적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고, 진동국민학교 교정에 위치한 미군 포진지(155밀리포)에서는 쉴새 없이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8월 6일) 아침 나는 부대 지휘소를 방문한 미군 소령(25사단)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요청을 받았다. 즉, 그날 새벽 미군들이 진동리-마산 간의 주보급로를 차단하고 있는 진동리 동북방에 있는 304고지의 적 기관총 진지를 공격했으나 워낙 저항이 강해 실패를 했다면서 KMC가 그 일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공격부대를 위해 4대의 전차와 수류탄 등을 지원해줄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에 304고지의 적을 섬멸하지 못할 경우 보급로의 마비로 아군의 작전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요청을 받아들인 나는 예비대인 7중대에 임무를 부여했다. 명령을 받은 7중대 장병들은 각자가 소지한 무기 외에 미군으로부터 공급받은 수류탄 2발씩을 휴대하고 오전 10시경 나와 중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전차4대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 개시선까지 접근한 다음 2시간여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오후 1시경 드디어 적 기관총 진지가 있는 그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오후 2시 반경 그 고지를 인수받은 미군들로부터 '용감한 KMC'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치열한 전투에서 7중대는 3명의 적을 사살하고 따발총 2정을 노획한 반면 2명의 전사자와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전투손실을 입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4시경이었다. 나는 행군부대를 이끌고 진동리에 도착한 미 해병5연대장 머레이(Murray) 대령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키가 팔대장신인데다 사무라이(일본 무인) 눈썹을 하고 있던 그는 내가 해병대 부대장이라고 하자 이곳에서 KMC와 만나게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한국전선에서 한·미 해병대 지휘관이 만난 첫 케이스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날 미국 해병들과 그들의 장비를 처음 보게 되었던 나는, 매우 깊은 인상과 함께 많은 것을 느꼈다. 얼룩무의 커버가 씌어져 있는 철모도 이채롭게 여겨졌지만 돌돌 말린 담요며 판초와 야전삽 등이 매달린 얼핏 보기에 한 짐은 돼 보임직한 뜸장 같은 상·하 배낭과 각자가 지닌 소화기 또는 중화기 등으로 완전무장을 한 그들이 섭씨 40˚를 오르내리는 그 혹서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단 한 사람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행군해 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2차 세계대전 때 유황도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그 섬을 지키고 있던 일본군수비대를 옥쇄하게 했던 그 용감한 미국 해병대가 드디어 한국전선에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의 빛깔은 미국 육군 병사들이 입은 초록색 전투복 보다는 약간 회색빛을 띤 것이었고, 그들의 왼쪽 가슴에 적혀 있는 독수리와 지구와 닻으로 된 미 해병대의 마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목격했던 미국 해병대의 장비 중에는 배 모양같이 생겼으면서도 바퀴가 달려 있는 수륙양용 주정(일명 물오리차)도 있었고, 거미같이 뒷 꽁무니에서 전화선을 풀어내며 논이건 밭이건 아무 곳이나 가고 있는 무한궤도 장비도 있었다. 그리고 미해병 제1여단장 크레이그(Craig) 준장이 타고 왔던 마린스(Marines)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구형 잠자리형 헬리콥터와 전차·야포 및 때마침 진동리 상공으로 출격 중에 있던 검은 독수리떼와도 같은 F-44(일명 콜세아-해적) 전투폭격기도 보았다는게 나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장비들이었다.

 

  F-44기 편대들은 근해에서 작전 중인 항공모함 시실리호에서 발진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장비를 목격하게 되었던 나는 역시 미국 해병대는 다르구나, 우리 해병대에도 저런 무기와 장비가 있다면 정발 잘 싸워 볼 수가 있을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여태까지는 후퇴만 거듭해 오던 유엔군이 천하무적의 미국 해병대까지 투입을 한 것을 보니 이제는 진짜 싸우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고, 또 이제는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킨 특수임무부대의 기동계획은 이렇게 세워져 있었다.

 

  즉, 중암리에 위치한 35연대는 그 위치에서 북쪽 도로를 따라 무촌리로 공격해 나가고, 5연대 전투단은 중간도로를 이용하여 진동리-봉암리 무촌리로 진격하여 2개 연대가 합세해서 장군대산(將軍臺山)의 진주고개를 향해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미 해병 5연대는 신기리(新基里)-고성(固城)-사천(泗川)의 바닷가 도로를 따라 진주 동남족으로 공격하고, 한국 해병대와 민기식 부대 등이 배속된 24연대는 서북산 일대에 침투하여 보급로를 위협하고 있는 적을 소탕하고 그 중간 산악지대를 장악하여 함안도로를 확보한다.

 

  그런데 작전이 개시된 8월 7일 오전 6시, 나는 사단의 명령에 따라 부대를 이끌고 마산으로 이동했다. 부대이동의 목적은 진동리-마산간 도로를 왕복하는 과정에서 그 보급로의 확보상황을 점검하고 위협요인이 있을 경우 그것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진동리-마산간 도로는 높고 험한 동전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뻣어내린 노폭이 좁고 굴곡이 심한 도로사정과 차량이 질주할 때마다 길길이 피어 올라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먼지 때문에 차량을 운행하기가 매우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해병대가 진동리에서 작전하고 있는 동안 병력과 탄약 등의 군수물자를 잔뜩 실고 마산에서 진동리로 가던 중 굴곡진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진 미군 트럭이 20~30대나 되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