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7. 統營上陸作戰 (6) 勝戰申告

머린코341(mc341) 2014. 7. 27. 09:07

국방의 멍에 - 7. 統營上陸作戰

 

(6) 勝戰申告

 

  함장과 기쁨의 악수를 굳게 나누었던 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 승전신고(勝戰申告)를 드리기 위해 함장과 같이 시가지 서북쪽에 있는 충렬사(忠烈祠)를 참배했다. 공의 후예들로서 당연히 참배를 해야 할 곳이었지만, 16일 밤 진해를 떠나 통영 앞바다로 오는 동안 임전왜란 때 한산도 앞바다에서 대첩을 거두신 공에게 부디 통영에 침입한 적을 단숨에 무찔러 없애게 해 주십사고 간청을 한 바 있던 나로서는 더더구나 참배의 예를 갖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충렬사 앞에 당도하여 사당 문을 열고 경내로 들어가 본 나는 마음속으로 염려하고 있던 바와는 달리 사당 건물 안팎 뿐 아니라 경내에 우거져 있는 수목에 이르기까지 탄흔(彈痕)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公)을 수군도독(水軍都督)으로 임명했던 명조(明朝) 신종(神宗)의 팔사품(八賜品)과 충무공의 손때 묻은 유물과 위패가 보존되어 있는 그 사당 뜰 앞에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올렸다. 공께서 굽어 보신 어전전투(御前戰鬪)에서 공의 후예들인 해군·해병이 이 땅을 침략한 괴뢰군을 단숨에 때려 부셔 빛나는 승전을 거둘 수 있도록 굽어 보살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한편 공의 후예들이 공의 유지를 계승하여 더욱 용감하게 잘 싸울 수 있게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참배를 마치고 나온 나와 이성호 함장은 그 길로 178고지로 올라갔다. 3중대가 점령하고 있는 그 고지로 올라가 작전지역을 관망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지 위에 오르고 보니 시가지 뿐 아니라 북쪽 바다(灣)건너편에 있는 원문고개가 한 눈에 조망되었다.

 

  그리고 고지 위에 올라갔을 때 콩밭과 채소밭이 널려 있는 고지 북쪽사면에서는 3중대의 일부 병력이 그때까지 패잔병을 소탕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깜짝 놀랐다. 무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 한꺼번에 십여 발씩 꽝, 꽝 ··· 터지고 있는 포탄들은 적의 야포탄이었다. 진동리지구 전투 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대대적인 포격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 포격에 의한 인명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문고개의 야산지대에는 상당수의 공동묘지가 있어 일부 대원들은 그 묘지의 봉분을 차폐물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대원들은 삽과 괭이 등의 연장이 없어 산병호나 교통호를 팔 수가 없는 실정이었으므로 그러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