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철도청장 역임한 제14대사령관 최기덕 장군
14대 사령관 중장 최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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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임기간 1981.3.16 ∼ 1982.12.28
- 생년월일 1930년 9월 12일
- 출 생 지 경북 대구
- 학 력
- 1952 해군사관학교 졸업(6기)
- 1963 미 해병학교 초급참모반 수료
- 1972 미 해군대학원 국방관리자과정 수료
- 1987 한양대학교 대학원 수료
- 1963 미 해병학교 초급참모반 수료
- 경 력
- 1952 해병소위 임관
- 1957 1여단 3연대 1대대 3중대장
- 1966 1여단 3연대 2대대장
- 1973 1사단 3연대장
- 1978 해군 교육단장
- 1981 해군 2참모차장
- 1981 14대 해병대 사령관
- 1982 해병중장 예편
- 1957 1여단 3연대 1대대 3중대장
- 상 훈
- 1966 대통령 표장(′80)
- 1968 화랑 무공훈장
- 1968 인한 무공훈장
- 1970 국방부 장관 표창
- 1971 보국훈장 삼일장
- 1974 보국훈장 천수장
- 1980 화랑 무공훈장
- 1981 보국훈장 국선장
- 1968 화랑 무공훈장
5대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을 지낸 제14대사령관 최기덕(崔璂德) 장군, 사단장 재임기간 중 특히 상륙기습훈련의 개념 정립과 특수훈련교장의 개설을 통한 전투력 강화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던 그는 예편 직후 제13대 철도청장으로 취임했을 때는 6년이란 전무후무한 최장수 근속기록을 수립하는 가운데 민자(民資)역사의 건설과 누적된 적자에서 흑자 운영시대로의 전환 등 철도 100년사에 길이 남을 신화적(神話的)인 업적을 남겼다.
경북 대구 출신(1930년생)으로 대구중학을 거쳐 해사 6기로 입교 임관(52년)한 후 약 1년 6개월 간의 함정근무를 마친 뒤 해병대로 전입, 중대장, 대대장, 여단 작전참모를 거쳐 67년 주월사 인사참모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던 최 장군은 귀국 후 3연대장을 거쳐 2여단 참모장 재임시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는 변을 겪었고, 74년 준장으로 승진하여 6해역사 사령관, 함대부사령관, 해군교육단장 등의 요직을 거쳐 79년 9월 제1사단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사단장 임기 중 특히 최 장군은 해병사단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시가지작전을 위한 훈련교장과 실탄사격이 가능한 보전(步戰)협동작전 훈련장과 침투사격장을 건설하는 업적을 남겼는데, 이러한 훈련장들은 해병대에서는 처음으로 개설한 훈련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사단장 재임기간 중 최기덕 장군은 팀스피릿 훈련 때 해병1개여단과 육군1개연대전투단 및 미 해병1개여단으로 편성된 혼성사단을 지휘하는 실적을 남기고, 제2참모차장 재임기간 중 104고지 지구와 도솔산지구 전적비를 건립했던 그는 군 복무기간 중 3회에 걸쳐 도미유학(미 해병학교기초반, 상륙전학교, 미 해군대학 국방관리과정 등) 과정을 이수했다.
최기덕 장군이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의 임기를 마치고 13대 철도청장으로 취임했던 것은 83년 1월이었다. 그런데 그 임기 중 최 청장이 6년이란 최장수 근속기록(그 전까지의 평균수명은 1.5~2년)을 세우며 남긴 민자역사(驛舍)시대의 개막과 누적된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킨 업적은 철도 100년사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84년 국유 철도재산 활용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실현시킬 수 있었던 그 민자역사는 노후된 역사나 주변의 노천공간에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건조(建造)한 고층건물의 일부를 철도청에 기부 채납 받아 쓰고 나머지는 민간참여사업체에서 쓰도록 하는 것으로 이같은 민자역사에 대중위락시설과 스포츠센터, 은행과 우체국, 관광안내소 등의 여러 편의시설, 관광식당, 종합백화점, 극장, 전시장 등의 문화센터 등이 들어서게 되면 여행자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고 철도청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도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 가능했던 것이며, 그러한 목적과 계획 하에 철도청에서는 서울역 뒤와 서부역 사이의 철도선로를 복개한 1만여 평의 대지 위에 그 효시(嚆矢)가 될 서울민자역사(연건평 7,500평, 지상3층, 지하2층)의 건립에 착공하여 88년 9월에 준공을 보게 되었고, 서울역민자역사가 준공되자 그 뒤를 이어(1~2년 내에) 청량리, 동인천, 대구, 영등포역사 등이 차례로 준공되었다.
한편 최 장군이 철도청장으로 취임했을 때 누적되어 있던 적자 규모는 약 400억 원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규모의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기 위해 최 청장은 과거에 지향해 왔던 안전 위주의 철도행정을 안전과 영업을 동시에 추구하는 행정으로 전환시켜 매년 연초에 1억 원의 기금으로 수익증대를 위해 실적을 거둔 약 300명의 유공자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포상제도를 제정 운영하는 가운데 아이디어 창출과 개발, 고객 유치와 수익 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격려함으로써 그 적자의 규모가 연평균 10%씩 감소되어 6년째인 88년 연말에 이르러 마침내 흑자로 전환하는 기적적인 결과를 초래시켰다고 하는데, 최 청장이 취임한 후 흑자 전환을 위해 개발한 아이디어 중에는 연간 3만톤 이상 탁송회사에 대한 특별디스카운트 제도와 2만톤 이상의 신규화물 탁송사에 대한 소운송 면허발급, 서비스 개선과 열차운행시간 단축 운행회수 증가를 통한 고객 유치작전의 전개, 효도관광, 신혼열차, 전세벚꽃놀이 등 각종 관광열차의 운행과 서울과 대판(일본)역에서 기차표 한 장만 구입하게 되면 그 표로 철도와 관부연락선, 비행기, 고속버스, 호텔 등을 불편없이 이용하는 가운데 서울과 일본을 편리하게 내왕할 수 있게 한 것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 전까지 4시간 50분을 기록하고 있던 서울-부산간 새마을호 운행시간을 14년 만에 4시간 10분으로 40분 단축시킨 것은 열차운행시간을 단축시킨 손꼽히는 사례라 할 것이다.
철도청장 재임기간 중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제2참모차장 때 등록)과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이수했던 최 장군은 철도청장 퇴임 후 6년 간에 걸쳐 금호그룹 계열사인 한국복합터미널, 금호특송(주), 금호랜트카(HERTZ)의 사장을 역임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2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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