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9. 首都奪還 作戰
(7) 죽은자의 生還
나의 기억 속엔 또 이러한 일도 떠오른다. 즉 한·미 해병대가 인천에서 출항하기 2~3일전, 해병대 CP에는 군산지구 전투 때 실종이 되어 전사자로 보고가 되었던 신영철(申永澈) 하사가 나타나 신현준 사령관과 나를 깜작 놀라게 했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그 신 하사가 나타나자 신 사령관은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네가 정녕코 신영철 하사란 말이냐?"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를 못했고, 나 역시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확인한 일이었지만 그의 팔과 복부 등에는 총격을 당한 끔찍한 상흔(傷療)이 역력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신 하사가 귀대하기 2~3일 전에는 군산지구 전투때 같은 수색대 소속으로 신 하사와 같이 트럭을 타고 군산 시내 명월관(明月館) 앞을 지나가다가 돌산(突山)쪽으로부터 북괴군 정찰대의 집중사격으로 중상을 입고 실종이 되고 말았던 진두태(陳斗泰) 상사가 나타나 전우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진 상사는 군산에 거주하는 일본해군 동기생의 집에 숨어 치료를 받고 있다가 9월 중순경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본대를 찾아 나선 끝에 서울을 거쳐 인천으로 오게 된 것이었고, 신 하사 역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그날 그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신 하사는 신 사령관의 특별한 배려로 휴가를 얻어 진해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진해에 가거든 꼭 장충단 묘역을 참배하라고 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그해 8월 중순경 진동리전투를 마치고 진해 통제부에 집결해 있을 때 장춘단 묘역에서 내가 눈여겨 본 적이 있던 <고 해군중사 신영철지묘> 라고 쓰여져 있던 그 신 하사의 묘비 팻말을 그로 하여금 직접 뽑아 없애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4후퇴 직후 진해에서 재회한 신영철 하사의 말에 따르면 그 팻말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때 내가 왜 꼭 장충단 묘역을 참배하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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