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0. 北 進 (2) 혹한(酷寒)속의 분전(奮戰)

머린코341(mc341) 2014. 8. 3. 18:27

국방의 멍에 - 10. 北 進

 

(2) 혹한(酷寒)속의 분전(奮戰)

 

  3개 대대의 병력을 재차 원산에 집결시킨 해병대사령부에서는 미10군단의 명령에 따라 금강산(金剛山) 일대에서 준동하고 있는 적을 포착 섬멸하기 위해 송도진(松島津)과 고저(庫底)를 거쳐 10월 4일 전 병력을 고성(高城)에 집결시켰다.

 

  그런 다음 삼척, 강릉, 양양 등지로부터 간단없이 적 패잔병이 북상을 하고 있는 그러한 정황 속에서 동해의 요충지인 송도진과 고성, 거진 및 간성(杆城) 등지의 일부 부락을 습격하고 있는 적을 소탕하기 위해 1대대는 특히 간성을 전투기지로 하여 그 지역 내에서 북상하는 적을 섬멸하도록 하고, 3대대는 통천(通川)을 전투기지로 하여 그 지역의 적 패잔병을 소탕하도록 했다. 그리고 예비대인 5대대는 사령부 주둔지역(고성)일대에 경계 배치시켰다.

 

  그런데 각 대대의 패잔병 소탕작전은 좌충우돌하듯 동분서주하며 소탕전을 벌였으나 그 성과는 매우 부진했다. 왜냐하면 적이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하게 되면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적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이 대항하지 못하고 달아나기만 했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동상(凍傷)에 걸려 있어 싸울래야 싸울 수가 없는 처지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설화(雪靴)와 파카를 공급받고 있던 우리 해병대도 건봉사(乾鳳寺)가 있는 그 산악지대에서 1명의 첫 동사자(凍死者)가 발생하여 전우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일몰과 동시에 급강하 했던 야간의 추위는 참으로 대단했었다.

 

  한편 고성에 집결한 후 나는 진동리 지구전투 때 통역을 맡아 주었던? 그 현봉학씨 생각이 나서 신 사령관에게 건의하여 인편을 통해 그를 고성으로 오게 하자고 했더니 신 사령관은 쾌히 승락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현봉학씨에게 보낼 짤막한 편지 한 장을 써서 신 사령관과 내가 서명을 한 다음 그것을 후방지역으로 출장가는 어떤 장교에게 건네주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서 현봉학씨에게 전달하도록 했더니 그 서신을 받아본 현봉학씨는 2~3일 후 그 장교와 함께 여의도에서 원산비행장으로 가는 미군 비행기를 타고 원산에 도착, 그곳에서 고성으로 오는 부대 차편을 이용해서 사령부에 도착을 했다.

 

  뒤에 언급이 되겠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현봉학씨는 그 후 미 10군단 민사부의 고문으로 임명되어 유엔군의 흥남(興南) 철수작전 때 10만명의 민간인을 후송시키는 데 있어 큰 기여를 했다.

 

  고성에 도착하여 나와 재회하게 된 현봉학씨는 손가방 하나를 들고 간혹 사령부 의무실을 방문하던 미군 의무장교(흑인)와 친숙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하루는 수혈을 요하는 급한 중환자가 발생하자 현봉학씨는 때마침 의무실에 와 있던 그 흑인 의무장교에게 혈액형을 측정하는 약과 수혈에 필요한 기재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더니만 그러한 것들이 있다고 하자 가방 안에서 꺼낸 그 약으로 그 환자의 혈액형을 먼저 측정해 본 다음 즉시 수혈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 그의 옆에 서 있던 내가 팔뚝을 걷어 올리며 내 피를 수혈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는 자기 피와 환자의 혈액형이 동일한 혈형(0형)이라고 하면서 자기 피로 수혈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릇에 물을 끓여 주사바늘을 소독한 그는 빈사지경에 이른 그 환자에게 약 300cc의 자기 피를 직접 수혈한 끝에 그 환자를 소생시킬 수가 있었다.

 

  현봉학씨가 수혈을 하는 기술에 능했던 것은 미국으로 유학하여 전공했던 분야가 수혈학(임상병리학)이었기 때문이었고, 그가 수혈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수혈에 대한 관심과 기여가 차츰 증대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성을 중심으로 연일 광범위한 소탕전을 벌이고 있던 해병대는, 11월 9일 10군단의 명령에 따라 3대대와 5대대를 그날 정오경 송도진에 집결시켜 원산으로 출항시키고, 간성에 주둔하고 있는 1대대로 하여금 고성지구를 함께 담당하게 했다.

 

  해병대가 고성지구에서 작전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신 사령관과 온정리(溫井里)의 온천장에서 목욕도 해 보고 이미 철이 지난 때이긴 했지마는 그 인상이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답던 금강산의 단풍 구경도 할 수 있었던 일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한편 원산에 도착한 3대대는 미 10군단의 배속이 되어 평원(평양-원산)도로를 확보하여 북상하는 적을 포착 섬멸하기 위해 미 해병 제1연대 3대대가 진출해 있는 아호비령(阿虎飛嶺) 남동쪽에 있는 마전리(馬轉里)로 전진(轉進)하고, 5대대는 신고산(新高山) 방면으로 향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