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2) 현봉학(玄鳳學)의 활약(活躍)

머린코341(mc341) 2014. 8. 4. 20:57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2) 현봉학(玄鳳學)의 활약(活躍)

 

  여기에서 다시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현봉학씨의 활약상에 관해 잠깐 언급해 두고자 한다. 그때 미 10군단 민사부의 고문으로 임명이 되었던 현봉학씨는 11월 하순경부터 유엔군이 후퇴할 기미를 보이자 민사부의 고문으로서 그동안 자주 접촉을 해 왔던 수많은 반공인사들과 기독교 신자들 뿐 아니라 자유를 동경하여 남으로 내려가기 위해 함흥까지 내려온 수많은 함경북도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많이 선편으로 철수를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끝에 처음에는 참모부장 포니 해병대령에게 한국 민간인들의 후송문제를 거론했으나 군단장에게 건의를 하겠다고만 대꾸를 했을 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10군단장 알몬드 중장에게 직접 건의를 해 보았지만 유엔군의 철수도 완전한 보장을 할 수 없는 상황하에 민간인들의 철수문제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을 때였으므로 그의 반응 또한 냉랭했다.

 

  그러던 중 12월로 접어들면서 전황이 더욱 불리해지자 미 10군단 사령부에서는 마침내 흥남철수작전을 개시하게 되었는데, 그 흥남철수작전때 현봉학씨는 참모부장 포니 대령과 군단장 알몬드 중장에게 매달려 애당초 5~6천명의 민간인을 수송하려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결국 1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철수시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둘 얘기는 1·4후퇴후인 1951년 4월 미 10군단사령부가 경주(慶州)에 위치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알몬드 군단장은 현봉학씨에게 1주일 간의 말미를 주면서 흥남철수작전 때 구출해 준 그 피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했는데, 그때 현봉학씨는 1주일 가지고서는 남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 부산, 거제도, 제주도 등지에 하선시켜 준 많은 피난민들을 다 찾아볼 수가 없어 가장 많은 피난민이 정착한 거제도를 둘러보고 비록 눈물겹도록 고생스런 피난살이를 하고 있을망정 모두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피난민들 얘기를 군단장에게 소상하게 전해 주었었다고 한다.

 

  그때 거제도를 방문했던 현봉학씨는 그 섬에 정착해 있는 함흥지구 기독교 신도 일동 명의로 된 감사장을 대표자인 채종묵씨로부터 받았는데, 그 함흥지구 기독교 신도들은 현봉학씨를 가리켜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으로부터 구출하여 성서에 적혀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이동시킨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인 '모세'의 이름을 따서 '한국의 모세'라고 불렀다고 한다(이 지면에 기재된 감사장이 곧 그것이다).

 

  현봉학씨의 말에 따르면 그때 10만명 이상의 우리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그 10군단 참모부장 포니 해병대령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의 고문직을 역임하고 1964년 예편한 후에 타계하였으나, 현봉학씨는 잊을 수가 없어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1965년도의 부활절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고인의 묘비 앞에 헌화를 했고, 또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포니 대령과역시 고인이 된 알몬드 장군의 영혼을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 드린다고 했으니 너무나 감동적인 화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 글을 맺으면서 나는 진동리지구 전투 때 우리 해병대를 위해 많은 공헌을 했고, 또 우리 해병대와 맺게 된 인연으로 미 10군단의 민사부 고문으로 기용되어 유엔군의 그 역사적인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남으로 철수시키기 위해 헌신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북한지역 기독교 신도들이 '모세'라고 부르기까지 했던 그 현봉학씨를 위해 그 누구도 훈장 수여를 건의한 사실이 없었던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뒤늦게나마 그 문제를 제기해 둔다. 1953년 2월말 재차 도미하여 펜실바니아대학 부속병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했던 현봉학씨는 그후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어 미국에서 거주(뉴저지 주)하고 있으며 미 의학계의 저명한 임상병리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