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4) 연대 본부의 편성
진해에 집결한 해병대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재출동에 대비한 부대정비와 훈련에 정진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장기화 될 것이란 판단 하에 부대편성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1, 2, 3, 5대대 등 4개 대대가 있었지만 1, 2, 3대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때부터, 5대대는 수도탈환작전 때부터 작전상 미 해병사단의 각 연대에 배속이 되고, 또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연대본부를 대신할 해병대사령부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연대본부를 편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전투를 해 왔었지만 북한지역으로부터 철수하여 후방에서 재정비를 하게 되고 보니 해병대의 전투력 강화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해군에 의존해 왔던 병력의 보충과 교육훈련 및 보급업무 등 제반 지원업무를 해병대사령부에서 직접 관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싸움터에서 피보다 더 진한 끈끈한 전우애로 뭉쳐질 수 있는 해병다운 신병, 해병다운 하사관, 해병다운 초급장교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그러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나는 신 사령관에게 건의하여 동의를 구한 다음 부대편성 계획표를 작성하여 해군본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리하여 해병대사령부에서는 12월 20일을 기해 신편한 연대본부와 1, 2, 3대대로써 해병제1연대를 편성하여 편성식을 거행하고 5대대를 독립대대로 두게 되었다. 해병대사령부와 새로 출범하게 된 그 해병제1연대의 편성표는 아래와 같다.
한편 해군본부의 협조를 받아 해병대사령부의 기능과 역할을 점차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로 했던 사령부는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던 도천국민학교(道泉國民學校)에 해병학교를 발족시켜(그후 진해여고로 이전) 장차 해병대에서 교육시킬 사관후보생 교육대를 운용할 준비를 갖추게 했는데 초대 교장으로는 3대대장으로 있던 김윤근 소령이 임명되었다.
진해로 내려온 뒤 각급 지휘관과 하사관들은 틈을 내어 장충단(獎忠壇) 해군묘지를 참배하여 전몰한 전우들의 영전에 명복을 빌었고, 또 해군병원을 방문하여 입원 중에 있는 전우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 당시 장충단 묘지에는 약 200위(位)에 가까운 영현이 안장되어 있었고, 해군병원에는 약 200명의 전상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었다.
연대본부를 편성하고 있던 그 무렵 나는 그 전 해 9월 하순경 PC-703함과 임무를 교대했던 PE-704함의 부장 공정식(孔正植) 소령을 우연히 통제부 내의 도로상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때 나는 해군장교들 중에 저렇게도 용감한 장교가 있는가 싶었던 지난날의 일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소탈하고 인상이 좋은 그에게 해병대의 대대장으로 오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 역시 해병대를 동경하고 있었던지 즉석에서 쾌락을 하여 편성 중에 있던 제1연대의 제1대대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해병대 사령관 글 > 4대사령관 김성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1) 재출동(再出動) (0) | 2014.08.06 |
---|---|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5) 해주 상륙명령 (0) | 2014.08.04 |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3) 해병대의 진해 집결 (0) | 2014.08.04 |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2) 현봉학(玄鳳學)의 활약(活躍) (0) | 2014.08.04 |
국방의 멍에 - 11. 철수(撤收) (1) 남(南)으로의 이동(移動) (0) | 201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