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1) 재출동(再出動)
한편 진해에 집결하여 부대정비와 훈련에 정진하고 있던 우리 해병대에 출동명령이 내렀던 것은 진해에 집결한 지 약 40일 후인 1월 하순경이었고, 출동지역은 경북 안동(安東)지구와 영덕(盈德)지구였다.
해병대가 안동·영덕지구로 출동하게 되었던 것은 유엔군과 국군의 북한지역 철수 후 신임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의 축차적인 방어전략에 따라 주문진(注文津)-홍천(洪川)-양평(楊平)-수원(水原)을 연결하는 선으로 전선을 정비했던 유엔군과 국군이 1월 8일 삼척(三陟)-제천(堤川)-여주(驪州)-평택(平澤)을 연하는 방어선에서 적의 침공을 일단 격퇴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 방어선을 반격의 기점으로 하여 또다시 전세를 역전시킬 수가 있었으나 바로 그러한 시기에 안동·영덕지구에 매우 위협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태백산맥을 타고 한국군 3군단과 미 10군단의 후방으로 침투한 적 게릴라부대(북괴군 10사단)의 활동으로 인해 아군의 보급로와 후방시설이 파괴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미 8군에서는 흥남철수 후 미 8군의 예비대로서 확보하고 있던 미 해병1사단에 명령을 내려 포항-안동간 도로를 확보하고 그 지역의 적 패잔병을 소탕하게 함에 따라 해병 제1연대는 작전상 미 해병사단에 배속되어 1월 하순경 독립 5대대와 함께 안동·영덕지구로 출동했다.
아 해병연대가 미 해병사단에 배속되자 연대본부에 헤리슨 중령을 단장으로 하는 엥글리코팀 등이 포함된 약 40명의 요원들로 편성된 미 해병대의 고문단이 파견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고문단이 파견된 후 나는 고문관 헤리슨 중령과 함께 미 해병대에서 제공한 C-46 수송기를 타고 바로 그 무렵 마산(馬山)에서 포항(浦項)으로 이동한 미 해병사단 본부로 가서 사단의 적전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 해병대에 부여된 임무를 수령하고 돌아봤다. 사단본부가 위치하고 있던 그 영일비행장에는 수십동의 야전용 친막이 가설되고 있었고, 활주로의 일각에는 출격준비를 갖춘 10여대의 콜세아전폭기가 대기 중에 있었다.
한편 진해에서 출동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동안 나는 이러한 준비도 했다. 즉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구사하며 벌떼같이 공격을 해 올 때 아군의 혼을 빼고 겁을 집어먹게 하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고 피를 불며 온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맞장구를 치면 될게 아니냐는 생각에서 궂이 용도는 밝히지 않고 각 대대에 지시하여 몇 벌씩의 징과 꽹과리를 장만하라고 지시를 했던 것인데, 지시를 받은 각 대대에서는 진해와 우동, 명지, 상남, 진동 등 그 인근지방의 여러 마을로 사람을 보내어 모두해서 10여 별의 징과 꽹과리를 구해 오긴 했으나 막상 그 진귀한 물품들이 부대내에 등장을 하게 되자 영문을 알지 못하고 있던 대원들은 반색을 하며 '와 신난다' '농악대회를 열라카는가베'하며 반가워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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