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4. 중공군(中共軍)의 대공세(大攻勢)
(1) 중공군(中共軍)과 접전(接戰)
그런데, 그날밤 10시경 아군 정면쪽에서 들리기 시작한 요란한 포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는 즉시 1선 대대장들을 유선전화로 호출하여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적이 대대적인 야포의 지원하에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며 공격을 해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말을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포로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각 대대장들에게 상황의 추이를 신속하게 보고하라는 말과 함께 최선을 다해 진지를 고수하라고 했다. 그리고 헤리슨 중령으로 하여금 사단본부 상황실에 연락을 취하여 우리 연대 정면에 사단포와 군단포를 집중시켜 줄 것을 요청하도록 했다.
그때 이미 우리 연대 정면 상공에는 군단 써치라이트부대에서 투사한 푸른 빛줄기가 구름에 반사되어 전방지대를 훤히 밝혀 주고 있었다.
그날밤 10시를 기해 취해졌던 중공군의 4월 춘계공세는 16개 군단 18만의 중공군과 약 10개 사단의 북괴군이 투입된 대대적인 공세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도하작전을 순탄하게 수행했던 1대대는 그런대로 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저수지의 수문쟁탈전 때문에 시간을 빼앗겼던 2대대는 가까스로 예정된 진출선에 도착은 했으나 날이 저물어 미처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의 공격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 그만큼 진지를 방어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1대대는 우군 포대의 지원하에 그 다음날 오후 3시경까지 진지를 고수했으나 2대대는 홍수와 같이 밀려오는 적을 끝내 감당하지 못해 그 이튿날 새벽까지 강변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그날밤 꽹과리를 치고 피를 불며 공격해 왔던 적의 공세가 제일 먼저 접촉이 된 곳은 1대대 3중대의 분초(分哨)였는데 그 분초가 철수한 후 3중대는 난생 처음 대적해 본 중공군의 인해전에 직면하여 고전을 치르다가 일시 제2선으로 철수했다가 그 다음날 미명을 기해 역습으로 그 진지를 되찾고야 말았다.
3중대가 2선으로 철수해 있는 동안 나는 대대장 공정식 소령을 EE-8전화기로 호출하여 적정을 물어보았더니 적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각 중대장들에게 전방에서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모조리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있지 말고 정찰병을 내 보내어 은밀히 적의 동태를 살펴 보라고 말한 다음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했더니 '연대장님 걱정마십시요. 요청할 것은 막걸리 밖에 없으니 막걸리나 몇 말 보내 주십시요'하면서 호걸스럽게 껄껄 웃었다.
통화가 끝난 후 나는 이토록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쩌면 저렇게까지 침착하고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역시 신뢰가 가는 지휘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나는 대대 진지 전방 약 100미터 지점의 후사면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이 새까맣게 깔려 있으니 그 적을 포로 갈겨 달라고 요청한 1대대장의 요청을 받고 헤리슨 중령으로 하여금 사단본부와 연대에 파견되어 있는 포병 연락장교에게 연락을 취하여 그 적들을 포격해 줄 것을 요청했더니 처음에는 아군 진지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근접하여 사격을 할 수가 없다고 했으나 재차 강력히 요청한 끝에 드디어 응락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잠시 후 1대대와 2대대의 전방 상공에는 수많은 조명탄이 명멸하기 시작했고, 휘황찬란한 조명탄의 불빛속에 무수한 포탄들이 날아가 작렬함으로써 그 전방의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한편 그날밤 우리 연대 좌측에 연계되어 있던 우군부대의 방어선에는 충격적인 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미 해병사단의 좌인접 사단인 한국군 6사단의 중앙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됨으로써 그 영향이 즉각 6사단의 우측방에 연계된 미 해병사단에 미치어 7연대와 5연대로 하여금 졸지에 철수를 단행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중대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나로서는 1대대장에게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라며 격려를 보낼 수밖에 없었고, 또 1대대장 역시 그러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채 고립이 된 상태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다.
1대대는 그 다음날 오후 3시경까지 진지를 고수하고 있다가 3대대의 결사적인 엄호하에 무사히 철수를 했는데 1대대가 그때까지 버티고 있을수 있었던 것은 물론 1대대 장병들의 불굴의 감투정신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전날 1대대에서 생포했던 그 중공군 포로의 말이 마음에 걸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을 하며 대비했던 화력증강계획에 따른 우군 포대의 강력한 뒷받침이 없었던들 그와 같은 기적적인 상황을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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