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5. 용두산 사령부
(6) 3개의 무공훈장(武功勳章)
그 해 여름철 나는 세 개의 훈장을 받았다. 그 중의 두 개(은성무공훈장과 리젼 오브 메리트)는 미국 정부의 것이었고, 하나는 대한민국의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었다.
화천전투 때 연대본부를 방문했던 미 해병사단 부사단장 폴라 준장의 상신에 의해 수여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 은성훈장은 6월 하순경 해군본부로부터 전달받았지만 누가 상신을 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던 사령관급 리젼 오브 메리트(지휘 공로훈장)는 그해 8월 유엔군측 휴전협상대표들과 취재기자단의 캠프가 있는 문산(汶山)으로 가서 유엔군측 수석대표 죠이 제독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죠이 제독의 방문요청을 받고 문산으로 갔던 발이 어느 날이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날 조봉식 대위 (후일 상공부차관 역임)과 함께 수영비행장에서 군용기 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던 나는 그 공항에 대기 중인 독립 5대대에서 차출한 지프차를 타고 문산지구로 향했다. 김포비행장에서 문산까지 가는 데는 약 3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여의도와 원효로 사이에 놓여 있는 부교(浮橋)를 건너 일단 서울 시내로 진입한 다음 독립문을 거쳐 계속 북상해야 했던 서울-문산간 도로는 많은 군용차량의 통행으로 파손된 곳이 많은 비포장도로인데다 요소 요소에 한국군과 미군들의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어 교통을 통제하는 바람에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문산에 도착했던 시각은 그날 오후 3시경이었다. 경비헌병의 안내를 받아 문산역사 근처에 있는 죠이 제독의 야전 천막의 캠프에 들어서자 죠이 제독은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그런 연후에 그는 각국 대표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미국 정부가 귀하에게 수여하는 이 훈장을 귀하에게 전달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훈장을 나의 목에 걸어 주었다. 누가 그러한 훈장을 상신했는진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동안 내가 일선부대 지휘관으로서 각 지구 전선에서 부대를 지휘했던 그 노고에 대한 치하와 격려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마운 뜻을 표했다.
태극무공훈장은 10명의 각군 수장자(受章者)들이 훈장 수여식이 거행된 임시 경무대(景武臺)에서 함께 받았다.
그 당시 임시경무대(지금의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부산시내 부민동(富民洞)에 있던 경남도지사 관저였고 바로 그 부근에 경남도청이 있었다. 건군 이래 처음으로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의해 직접 수여되었다. 그 자리에는 신성모 국방장관을 위시한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관련 부처의 장관도 함께 배석을 했다. 당시의 육군참모총장은 삼군 총장모장을 겸임하고 있던 정일권(丁一權) 장군이었고, 공군참모총장은 김정렬(金貞烈) 장군이었다.
그날 훈장을 받았던 10명의 수훈자(殊勳者) 들은 해군 2명 해병대 1명, 육군 8명이었다. 해군의 수훈자는 손원일 참모총장과 PC701함 함장 최용남(崔龍男) 장군을 비롯한 7명의 장병들이었다. 그리고 7명의 육군 수훈자들 중 4~5명은 전사한 고인들이 되어 소복한 미망인이나 흰 두루마기를 입은 고인들의 부친이 대신 추서(追敍)된 훈장을 받게 됨으로써 그 자리를 숙연하게 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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