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2) 재출진(再出陣)과 사천강 전초지대

머린코341(mc341) 2014. 8. 14. 21:58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2) 재출진(再出陣)과 사천강 전초지대

 

  1952년 10월 중순경이었다. 나로서는 할 일이 태산같던 시기에 나는 해병 제1전투단장으로 임명되어 또 다시 전선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그 해 3월 중순경 중동부전선으로부터 서부전선(장단지구)으로 이동하여 판문점 남쪽 사천강(四川江) 전초지대에 배치되어 있던 해병 제1연대는 그동안 불리한 작전지역에서 우세한 중공군 정예사단과 대치한 가운데 연일 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10월 1일 김포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독립 5대대와 포병대대 및 전차중대 등으로 증강된 연대전투단(聯隊戰鬪團)으로 승격된 바로 그 다음날(10월 2일 - 추석전날) 밤에 있었던 중공군의 1차 추기공세로 좌·우일선 대대에서 보유하고 있던 3개의 최전방 전초진지를 피탈당했다.

 

  수차에 걸친 역습전을 감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점(基點)이 잘 잡혀있는 중공군 포대의 정확한 탄막사격 때문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전투단은 부득불 제2의 외곽전초선으로 전초진지를 후퇴시키는 조처를 취하고 말았는데, 그와 같은 혈전이 있는 지 약2주일 후 그러한 인사발령을 받게 되고 보니 나로서는 비장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또 다시 일선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나의 아내는 마치 내가 일선 가기를 자원하기라도 했듯이 "차라리 일선하고 결혼을 할 일이지 왜 나와 결혼을 해서 허구한 날 후방에 죽치고 앉아 남정네 걱정만 하게 하느냐" 며 불평을 했다.

 

  내가 전투단장 김석범 준장과 임무를 교대한 날짜는 10월 20일이었다. 그날 김석범 단장은 재임기간 중에 달고 있던 대령 계급장을 떼고 준장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단 본부를 떠날 때 타고 간 지프차의 앞 뒤쪽 범퍼에도 빨간 별판이 붙어 있었다.

 

  김석범 준장이 대령 계급장을 달고 전투단으로 정식 승격되기 전에 제1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된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즉, 사령부에서 부사령관으로 재임중인 김석범 준장을 김 장군 자신의 원에 따라 전투단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미 고문단측에서 편제상의 계급이 대령인 자리에 준장을 임명하게 되면 작전상 배속되어 있는 미 해병사딘장에게 불편을 주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그 대안(代案)으로써 대령의 계급으로 한 계급 낮추어서 임명을 했던 것인데, 물론 잠정적인 조처이긴 했지마는 김석범 장군의 경우처럼 스스로 한 계급 낮추어서 자신이 지휘해 보고 싶어했던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던 예는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