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3) 패인(敗因)의 분석(分析)
한편 전투단장으로 취임하여 부대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본 나는 극도로 저하되어 있는 장병들이 사기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피로에 지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불패 상승을 자랑해 왔던 우리 해병대로서는 일찌기 없었던 사기의 침체현상이었다.
취임 직후에 소집한 지휘관회의를 통해서 1차 추기공세 때의 상황을 청취해 본 나는 그날 밤 저녁 8시부터 8시 15분까지 계속된 중공군 포대의 공격지원사격이 공격목표가 된 3개의 조그마한 전초진지에 수백 발씩 떨어졌다는 사실과 적 포대의 공격지원 사격이 개시된 후 아군 포대의 즉각적인 대응사격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일선 1대대의 경우 피탈당한 67고지와 36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5차례에 걸친 역습전을 벌였으나 시종 같은 경로를 따라 반복이 됨으로써 중공군의 정확한 탄막사격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는 내용의 증언도 청취했는데, 그러한 요인을 분석해 본 나는 한번 재미를 본 뙈놈들은 그들의 심리적인 습성으로 보아 이번에는 필시 더 큰 재미를 보기위해 반드시 같은 만월야(滿月夜)에 같은 공격방법으로 공격을 해올 것으로 판단했고, 또 이번 기회에는 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2선으로 후퇴시켜 놓은 아군의 전초진지 뿐 아녀라 어쩌면 주저항선까지 유린하려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우리 해병대의 진가를 발휘하여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 놓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그러한 생각을 지휘관들에게 전하면서 저하된 사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방법은 오로지 적과 싸워서 이기는 길 뿐이니 정신을 바짝 차려 반드시 본때를 보여 주자고 했다.
그리고 지휘관회의 석상에서 나는 전초진지를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방어전술상의 기본원리와 같은 대응조처가 되겠지만 적의 공격지원사격이 개시될 때 이용가능한 지원화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적 보병들의 예상접근로를 지속적으로 맹타하여 적의 제1진 공격제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전초진지에 대한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피력했고, 또 적 후속부대의 접근 역시 같은 방법으로 때려부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그 당시 아군 포병부대에는 VT신관이 달린 포탄이 공급되고 있어 대응사격만 잘 하게 되면 적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VT신관이란 발사된 포탄이 지상 약 10미터 높이에서 폭발하여 무수한 파편을 마치 우산꼴 모양으로 그물을 치듯 내려 퍼붓게 하는 특수한 포탄 신관을 말함인데 나의 기억으로는 한·미 해병대가 서부전선으로 이동한 후에 그런 포탄이 공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나는 적 야포의 공격지원 사격이 진지 후사면으로 연신될 대 전초진지 장병들이 진전으로 쇄도해 오는 적을 향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탄약의 3분의 2를 무조건 소모하도록 하여 그 공격 제1타를 섬멸해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 적의 포격으로 인한 전투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초진지와 주저항선 진지의 보강작업도 최전을 대해 서둘러야 되겠다는 생각과 전초진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67고지와 36, 86고지 등 적 수중에 들어가 있는 고지와 그 전방에 설치된 적의 잠복처를 분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나의 생각을 예하부대 지휘관과 참모들에게 철저히 시달했던 나는 미 해병사단장 폴락(Edwin A. Polock) 소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초진지는 우리가 지킬테니 그 전방에 대한 화력지원은 사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155미리 야포와 군단포까지 동원해서 책임을 지고 맡아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중공군은 그들의 속성상 또 한번 재미를 보기 위해 다가오는 만월야에 반드시 같은 방법으로 공세를 취해올 것이니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놈들의 콧대를 남작하게 꺾어 버리자고 했더니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그렇게 해 보자고 했다.
부임신고 때도 한 차례 만나 본적이 있던 폴락 소장은 태평양전쟁 때 용맹을 떨친 두뇌가 명석한 장군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남부지방 출신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했던 그는 점심식사 시간에는 반드시 군목과 같이 기도를 한 후에 식사를 하곤 했다.
당시 전투단 부단장은 1대대장을 역임한 남상취(南相徵), 중령이었고, 1대대장은 김종식(金鍾植) 소령, 2대대장은 서정남(徐廷南), 3대대장은 안창관(安昌寬) 소령, 5대대장은 해군 백령도 주둔 부대장을 마치고 해병대로 전임한 강기천(姜起千) 중령이었는데, 1대대가 김포로 이동한 직후 함덕창(咸德昌) 소령과 임무를 교대했던 김종식 소령은 924(김일성)고지 탈환작전 때 1대대장을 역임한 역전의 대대장이었다.
또한 그 당시 전투단의 포병대대장은 정만진 소령이었고, 전차중대장은 과거 해군방첩부대장을 역임했던 오상규 소령이었다.
그리고 전투단이 맡고 있던 주저항선 우일선에는 3대대, 좌일선에는 2대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2차공세 후에 김포지구로 이동한 1대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장단지구로 이동한 5대대는 전투단의 예비대로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해병대 사령관 글 > 4대사령관 김성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5) 중공군(中共軍)의 2次 대공새(大攻勢) (0) | 2014.08.14 |
---|---|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4) 작전지역(作戰地城)의 특성(特性) (0) | 2014.08.14 |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2) 재출진(再出陣)과 사천강 전초지대 (0) | 2014.08.14 |
국방의 멍에 - 16. 재출진(再出陳) (1)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0) | 2014.08.14 |
국방의 멍에 - 15. 용두산 사령부 (12) 승보(勝報)와 비보(悲報) (0) | 2014.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