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軍事) - 염하 상륙돌격 시범 작전을 지휘한 전세권 대령
입대 전 미육군에 종군
황해도 해주출신(1928년생)으로 해주중학교를 졸업한 그 해(46년) 자유 대한으로 월남하여 단국대학 재학 중 6.25전쟁의 발발로 남으로 피난하던 중 한국전선에 제일 먼저 투입이 되었으나 7월 20일 대전에서 사단장 띤 소장이 실종이 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미 24사단 21연대 1대대의 통역관으로 채용되어 창녕지구 전투에 종군을 하게 되었던 전세권(全世權) 대령은 미 24사단과 미 2사단 및 미 해병5연대가 투입된 창녕지구 전투가 끝난 후 대구에서 재정비해 21연대 1대대 안강 경주지구 전투를 거쳐(인천상륙작전) 서울지구로 북상했을 때 해간 3기 전형시험에 합격하여 동래에 있는 육군종합학교(19기)에서 소정의 과정을 거쳐 견습기간(3개월)의 계급장을 달고 중동부전선으로 출동, 3연대 11중대 1소대장으로 배치되어 924고지(일명 김일성고지)탈환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당시의 11중대장은 신양수 중위(해간2기)였다. 한편 여기에서 전세권 대령이 미 24사단 21연대 1대대의 통역관으로 채용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전 대령이 21연대 1대대와 인연을 맺게 된 창녕군의 피난지에서 약 1개월 간 머물러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전 대령이 낙동강 하류지대인 그 먼 곳까지 내려기게 된 연유는 이러했다. 즉 대구에 있는 2군 기지창에서 전 대령의 제씨(당시 하사관)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제씨의 후배되는 대원이 “갈 곳이 마땅찮으시면 자기집(창녕군 성산면 설뫼리 소재)으로 가서 쉬시지요”하고 권하기에 그 길로 그 곳까지 원행하여 그 농촌지대의 한가한 마을에서 약 1개월 남짓 편안하게 지내고 있던 중 느닷없이 그 지역까지 내려 온 미군부대(21연대 1대대)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바람에 통역하는 사람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 전세권 대령은 신세진 그 한씨네 집을 꼭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도 했다.
정세웅 중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924고지 전투가 끝난 뒤(방어기간 중) 진해 훈련소 중대장 요원으로 차출되어(당시 훈련소장 오명복 중령) 약 개월 간 근무한 데 이어 서해 도서부대로 발령이나 휴전이 될 때까지 약 2개월 간 석도부대(42중대)의 S-1으로 근무했던 전세권 대령은 특히 그 석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중대장 정세웅 대위로부터 전해들은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즉 정세웅 대위가 서해도서 부대의 인사참모로 있을 때 도서부대장으로 취임한 김두찬 대령은 촉박한 기간(2~3일)을 정해 주며 그 기한 내에 백령도에 거주하는 전 민간인(군인가족 포함)을 퇴거시키라는 추상같은 엄명을 인사참모 정세웅 대위에게 내리자 정세웅 대위는 헌병대장으로 하여금 민간인들의 철거 준비를 서두르게 하는 한편 재무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용할 예산을 전액 내놓게 하여 그 예산으로 민간인들이 땅마지기나 소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서부대장의 긴급명령을 차질 없이 이행했다는 것이었는데, 전세권 대령의 말에 따르면 후일(5.16군사정변 때) 최고위원이 되었고 또 공무원장을 거쳐 조폐공사 사장까지 역임했던 그 정세웅 대위(전역시기 계급 준장, 고인)가 아니었다면 김두찬 부대장이 내린 그와 같은 긴급명령을 기한 내에 이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염하 상륙돌격 시범작전
휴전 후 육군초등군사반을 수료한 다음 교육단 군수보좌관을 거쳐 57년 미 해병대의 교관학교를 이수했던 전세권 대령은 귀국 후 교수부 참모학교 과장 및 교장을 거쳐 중령으로 진급할 때까지 6개월 간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3연대 1대대장 재임기간 중 5.16군사정변을 맞이했던 전세권 대령은 바로 그 다음 해(62년) 월 D-15일 여단본부에서 내린 명령에 따라 김포군 갑곶에서 국가재건회의 박정희 의장과 혁명정부의 내각수반 송요찬 장군 미 1군단장 김성은 사령관 등 VIP들과 공정식 여단장 등 여러 지휘관의 관망 하에 염하상륙돌격 시범작전을 실시하여 명성을 떨쳤다.
4.2인치 중박격포와 105밀리 곡사포 전초포를 비롯한 각종 중화기에 의한 막강한 화력의 엄호 하에 전개된 이 상륙돌격시범작전은 미 1군단에서 지원한 여러 대의 병력 수송용 헬기들이 선제 수직상륙을 감행하는 가운데 20여 척의 LVT에 탑승한 해병들이 대안에 상륙 돌격을 감행함으로써 최절정에 달하였고, 실전을 방불케 한 이와 같은 장면을 5인의 해병(극영화) 촬영팀은 신나게 촬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백주(10~12시 어간)에 실시한 이 시범작전은 김포반도는 해병대가 아니면 방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했던 작전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전세권 중령이 지휘한 3연대 1대대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김성은 사령관의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사단헌병사령과 LFTU단장
3연대 1대대장 근무를 마친 뒤 사령부 군수국 통제과장으로 발령이 났던 전세권 대령은 뜻밖에도 해군 헌병감 조남철 대령(후일 준장 예편)의 간곡한 권유로 사단 헌병사령으로 발령이 났는데 혁명정신의 구현과 자체 정화를 위해 포항지구 헌병대에 근무하는 하사관급 대원들 중 30여 명을 제거하는 가운데 솔선수범하여 비리 척결과 기강확립을 위해 헌신한 끝에 1년 반 후 그 직위로선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는 선례를 남겼다.
한편 대령의 계급으로 육군대학을 수료한 후 함대사령부 해병보좌관을 거쳐 69년 2차 도미유학의 길에 올라 미 해군의 상륙전학교(고급장교과정)를 수료했던 전세권 대령은 귀국 후 LFTU 단장을 거쳐 70년 2월부터 72년 연말경에 이르기까지 제5연대장, 사령부 군수국차장, 제1상륙사단참모장, 지휘참모대학 총장 등의 중요 직책을 자타가 공인하듯 성실 일변도로 수행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장성진급이 기대했던 시기에 누락이 되자 의원 예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폐공사에서 정년퇴직
한편 예편 후 1년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과정을 이수했던 전세권 대령은 뜻밖에 조폐공사사장 정세웅 장군의 호의로 조폐공사 부장직으로 입사하여 정년 퇴직시까지 10년간(73~83년) 정성을 다해 봉직했다. 끝으로 남겨 둘 두 토막의 얘기가 있다.
첫 번째 얘기는 과거(휴전 전) 석도부대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그 정세웅 조폐공사 사장(재임기간 72. 9~79. 12. 3)이 타계하자 전세권 대령은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인의 기일이 되면 늘 고인의 묘소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헌화하며 명복을 빈다는 것이며, 두 번째 화제는 고인이 된 친구(군대 동기, 박 모씨)의 초상집에서 터뜨린 폭소를 자아내게 한 유머와 관련된 것인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전세권 대령과 같은 시기에 도미유학길에 올라 미해병대의 LVT학교에 다니고 있던 고인이 된 박 모 소령(당시 계급)은 주말만 되면 교관학교에 다니고 있는 전세권 소령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에 있는 마약과 도박과 술과 섹스로 흥청거리는 작은 도시 티니로 통역장교 K 모 대위 등과 함께 불러내어 함께 즐기자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때마다 전세권 대령(당시 계급-소령)이 “야 이 친구야 어쩌자구 주말마다 사람을 귀찮게 하나”하고 말하면 “이 놈의 가운데 다리가 말을 들어야지”하고 대꾸하기 일수 였고, “야 장화는 신고 가야지”하면 들은 적도 있고 듣지 않는 적도 있었다고 했는데, 귀국 후 어느 하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가운데 다리가 감기가 걸린 것 같아”하기에 깜짝 놀라며, “뭐? 그렇다면 부인께서…”하자 태연히 “도리가 없는 거지 뭐”라고 대꾸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일화를 몇 몇 동기생들이 자리를 같이한 심야의 영안실에서 터뜨리자 그 자리는 폭소의 도가니로 화했다고 한다.
친구의 망령이 쉬고 있는 병원 영안실에서 이러한 일화를 터뜨린 사람도 드믈 것이다(그 박 모씨의 사망연도는 85년이라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3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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