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軍事) - DI스쿨의 선구자 조준행 상사
초도에서 겪었던 일
황해도 해주출신(1932년생)으로 해주사범학교 1학년 때 8.15해방을 맞게 되어 서울로 이주,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던 해 6.25전쟁이 발발하여 51년 11월 해병대 12기 신병으로 입대했던 조준행 상사는 신병훈련소를 수료하는 즉시 서해부대 7대대 산하의 초도부대에 배치되어 52년 1월부터 53년 12월 말경까지 민간인 유격대도 기지를 두고 있던 그 초도에서 근무했는데 그 초도시절을 돌이켜 보며 조준행 상사는 특히 해안에 근접한 지점에 진출해 있던 1개 중대의 병력 중 1개 소대의 병력이(석도) 간조시를 이용해서 심야에 은밀히 침투한 1개 중대 규모의 적에 의해 필사적으로 탈출한 분대장 1명을 포함한 수 명의 대원을 제외하곤 전원 생포되어 적진으로 끌려갔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들이 휴전 후 포로 교환 때 살아서 돌아 왔는지도 새삼 궁금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휴전 후 진해로 철수 상남에 집결했던 도서부대 금촌(파주)지구에서 2연대로 개편되고 전투단이 여단을 거쳐 사단으로 승격했을 때 사단본부 정보참모실에 배치되어 의정부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미 1군단의 기밀문서를 취급하고 체포된 간첩을 송치하는 일도 맡았었다고 말하는 조준행 상사는 55년 초 교육단으로 전속되어 부푼 꿈을 안고 도미유학의 길에 오르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59기 특별중대
바로 그 무렵 해병대사령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추진 중에 있었다. 즉 교육단에서 선발한 10명의 하사관들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켜 3주간의 교육을 받게 한 다음 미 해병대의 신병훈련소에 입소시켜 13주 교육을 수료함과 동시에 DI스쿨과정(4주)을 이수시켜 그들을 59기 특별중대(150명)의 소대장 겸 교관으로 확보하여 59기 신병들의 교육을 담당토록 했던 것인데(특별중대의 중대장은 56년 6월 미 해병학교 기초반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한 장연기 대위가 담당) 결과적으로 59기 특별중대에서는 사령부의 방침에 따라 그 10명의 도미유학 선구자들을 소대장 겸 교관으로 배치하여 미 해병대 신병훈련소의 교과과정과 교재를 적용시킨 13주간의 교육을 시킴으로써 DI에 의한 신병훈련소 교육의 장을 열게 되었고, 금촌시절의 해병1여단과 해병사단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던 문산농고 출신자들이 주류를 이룬 그 150명의 59기 신병들이 수료하자 신병훈련소에서는 그들 중 38명을 엄선하는 한편 특별중대의 선임하사관과 1소대장을 맡았던 조인범 하사관과 조준행 하사관을 교관으로 임명하여 그 30명에게 미 해병대의 DI스쿨에서 받았던 교과과정과 교재를 그대로 적용시켜 4주간의 교육을 실시토록 했고, 그 교육이 끝나자 그들(30명)을 2등해병에서 병장의 계급으로 3계급 특진시켜 각 중대의 훈련교관으로 배치시켰고, 조인범․조준행 등 그 10명의 특별중대 용원들은 각 중대의 소대장으로 배치하여 그 후에 입대한 신병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고, 또한 그 59기 특별중대 때부터 훈련소에서는 빳다와 구타 등에 의한 기합이 사라진 대신 토끼뜀이라든가 원산폭격 오리걸음 또는 반복훈련을 실시하는 등 신 기합이 생겨났었다고 한다.
2차 도미유학
한편 진해 신병훈련소에서 3년 간 DI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57년 1월 1일 경무대로부터 초청받은 해군․해병대의 10명의 모범용사(해군 5명, 해병대 5명) 중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해군참모총장과 김석범 사령관의 인솔 하에 경무대를 방문,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기념사진도 촬영(사진참조)했던 조준행 상사는 59년 9월 2차 도미유학 코스인 미 해병대의 수색대 교육과정(6주)을 함께 입교한 일행(장교 6명, 사병 6명)과 함께 이수했는데 적지 침투와 위기 탈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영의 반복 훈련과 잠수함에 의한 적지 침투와 임무를 마치고 잠수함으로 승함할 때의 페스터 훈련 및 주간에는 모래알이 뜨겁고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사막지대에 투입되어 1주일 간 파충류 등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며 생존 방법을 터득하는 훈련을 포함한 6주간의 특수 수색대 훈련을 받은데 이어 4주간의 교관교육을 받고 61년 1월에 귀국했던 조준행 상사는 1사단 수색중대(장, 이효갑 소령)에 배치되어 3년간 포항과 진해만 일대에서 실시된 미 7함대의 대잠 훈련에 참가한 것을 비롯, 제주도에서 실시된 고무보트에 의한 단독 침투훈련에도 참가했고, 4주간의 육군공수특전단의 공수훈련을 받는 등 많은 특수훈련을 쌓았으며, 62년 진해기지사령부의 주임 상사를 거쳐 사령부 고문단 선임하사관으로 전속이 되었던 조준형 상사는 그 해 사령부 주임상사를 비롯한 4명(여단, 포항기지, 1사단 등)의 주임상사들을 인솔하여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 해병대의 제3사단을 방문하여 사단장을 예방하고 사단 주임상사의 임무와 관련된 분야를 견학할 때(1주일) 통역을 했다고 하며, 64년 3차 도미유학으로 미 해병대의 탑재교육 과정(6주)을 이수한 뒤로는 오키나와의 미 해병3사단 사령부에 설치된 합동훈련 기획단에서 근무하다가 66년 7월 상사의 계급으로 전역했는데, 전역하기 전 특히 조 상사는 그 해 월남 전선을 시찰한 미 해병대사령관 쉐퍼드 대장이 내한하여 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사령관을 수행한 미 해병대 사령부 주임상사(전 3사단 주임상사)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고, 또한 사령부를 비롯한 주요부대의 주임상사들과 함께 혈맹의 전우애로 맺어진 그 귀한 손님을 정성껏 환대했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92년 미 8군에서 정년퇴직
전역 후 조준형 상사는 운이 좋게도 과거 사령부 고문단 선임하사관으로 근무할 때 소령의 계급으로 고문단 군수 보좌관으로 있었고, 64년 탑재교육(3차 도미유학)을 받을 때 만난 적이 있었던 주한 미 8군 시설공병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던 소령의 추천으로 다른 9명의 한국해병대 출신 예비역 장병들과 함께 동 시설공병사령부의 과장급으로 근무하였으며, 92년 퇴직할 때까지(67년부터) 25년간을 근무했다고 하니 하해와 같은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 밖에 해주사범학교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조준행씨의 말에 따르면 전역한 후에도 그는 2~3년간 주한 미 해병대사령부에서 개최하는 미 해병대의 창설기념일(11월 11일) 행사에 주한 미 해병대사령부 주임상사의 초청을 받아 현역 부대의 주임상사들과 함께 참석을 했다고 하니 한미 해병대 주임상사들의 철석같은 우애를 실감케 해 주는 화제로 기억될 것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3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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