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2) 상륙전(上陸戰) 작전처(作戰處)

머린코341(mc341) 2014. 8. 26. 19:36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2) 상륙전(上陸戰) 작전처(作戰處)

 

  다른 한편, 휴전이 되자 해병교육단에서는 교수부 산하에 '상륙전 작전처'라는 신설부서를 설치하는 한편 교수부 내에 번역업무를 담당하는 현수문관들을 확보하여 미 해병대의 상륙전교범을 번역하게 함으로써 상륙전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상륙전작전처의 처장으로 활약했던 사람은 1952년 7월 공정식(중령), 장대길(대위) 등과 함께 해병대의 제1차 도미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 해병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왔던 조봉식(趙鳳植) 대위였고, 함께 귀국을 했던 공정식 중령은 교육단의 부단장 겸 교수부장으로 임명되어 상륙전 작전처의 업무를 적극 지원했다.

 

  또한 1954년 3월과 9월에 하사관학교와 야전위생학교 등을 발족시키게 되었던 교육단에서는 그해 11월 12월에는 상륙전학교와 상륙부대훈련단을 발족시켜 상륙전 교육과 상륙전 훈련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도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장교들로 구성된 교수진이 확보되자 해병교육단에서는 1955년 4월 상륙전학교에 상륙전초등군사반을 설치하여 해병대장교 및 육·해·공군으로부터 위탁받은 장교들에 대한상륙전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러한 교육이 실시되기 전 교수부에서는 장대길(張大吉) 대위를 비롯한 2~3명의 도미유학 이수 장교들을 그 당시 진해에 집결해 있던 3군사관학교를 순방케 하여 연합작전의 성격을 띤 상륙전의 개념과 기본교리를 소개하는 사전 선전교육을 실시한 바 있었다.

 

  또한 교육단에서는 신병훈련소에 하선망(下船綱) 훈련장을 설치하여 신병들을 훈련시켰고, LVT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2차세계대전 때 미 해병대에서 사용했던 하체가 물오리 모양을 한 더쿠차(Dukw : 수륙양용)와 LVT 3-C 1개 중대를 도입할 계획을 추진했는데, 실제로 LVT학교가 설립된 것은 1958년도였다.

 

  한편 교육단에서 이와 같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동안 해병대에서는 1954년 10월에 이르러 드디어 거제도에서 제1차 BLT(대대상륙단)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상륙전훈련의 막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상륙전훈련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친히 관망대에 임석하여 훈련을 관망했다.

 

  그리고 그 훈련이 효시가 되어 해병대에서는 1956년까지에는 전 보병대대가 BLT 훈련을 마치게 되었고, 1957년에는 2차에 걸친 RLT(연대상륙단) 훈련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와 같은 상륙전훈련은 미 해병대와 우리 해·공군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이루어졌었다.

 

  한편 나의 교육단장 재임기간중 교육단에서는 모의상륙전(模擬上陸戰)훈련의 실내 시범을 할 수 있는 사반실(砂盤室)을 건조하여 각 학교의 피교육자들과 교육단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시범훈련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는데, 미 해병대의 사반실을 본따서 만든 그 사반실은 동양에선 단 하나밖에 없는 교육단의 명물로 등장되고 있었다.

 

  그 모의 훈련장(사반실)에 동원된 모형화된 대소 규모의 선단(船團)은 상황실에서 상륙전의 각 단계별 상황전개를 소개하는 상황설명장교의 시나리오 설명에 따라 빈틈없이 작동되는 통제실의 반자동적인 기계장치의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기동을 했고, 또 모형 전함이나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함포사격의 폭음과 항모(航母)에서 발진한 전폭기가 적 해안으로 급강하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하는 폭음 등이 폭약장치에 의해 실감나게 터지고, 때를 기다리고 있던 모형 헬기편대에 의한 수직상륙(垂直上陸)이 인상깊은 장면으로 장식되고 있던 입체적인 모의상륙전 시범훈련을 관람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관람객들 중에는 민간인들도 많았는데, 민간인들의 경우는 그러한 시범훈련을 통해 해병대가 수행하는 상륙전에 대한 인식을 그만큼 깊게 가질 수가 있었다.

 

  또한 교육단장 재임기간중 교육단에서는 해병대의 발상지인 덕산등에 사격장을 만들어 일발필중의 사격술을 연마하는 도장이 되게 했고, 신병훈련소에 동양에서 가장 큰 왕자형(王字型) 식당과 대형목욕탕을 건립하여 신병들의 복지향상을 도모했는데, 그때 건설했던 덕산사격장은 그 후 우리해병대가 자랑하는 무수한 명사수를 길러낸 유서깊은 요람이 되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